[뉴스트래블=정국환 기자] 거대한 벽은 강한 국가의 상징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벽은 강함보다 두려움에서 먼저 태어난다. 무엇인가를 막아야 할 때, 권력은 벽을 세운다. 막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클수록 벽은 더 높아진다. 만리장성은 그런 구조물이다.
만리장성은 흔히 인류 최대의 토목 건축으로 불린다. 하지만 길이의 기록보다 중요한 것은 그 반복성이다. 장성은 한 번에 완성된 구조물이 아니다. 전국시대의 각국이 흙으로 쌓은 성벽에서 시작해, 진, 한, 수, 명에 이르기까지 시대마다 덧대고 허물고 다시 세웠다.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이어졌고, 이어졌기 때문에 제국의 상징이 됐다. 장성은 완결의 건축이 아니라, 불안의 누적이다.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한 직후 북방의 흉노를 견제하기 위해 성벽을 연결했다. 통일 제국의 첫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였다. 수십만의 인력이 동원됐고, 수많은 이가 공사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공사가 단지 군사적 필요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데 있다. 통일 직후의 제국은 내부 결속이 더 절실했다. 거대한 공사는 백성을 조직하고, 자원을 통제하고, 황제의 권위를 가시화하는 방식이었다. 벽은 북방을 막는 동시에 내부를 묶는 장치였다.
그러나 장성은 침입을 완벽히 막지 못했다. 몽골 세력은 장성을 넘어 원나라를 세웠고, 만주족은 명나라를 무너뜨렸다. 그렇다면 질문이 남는다. 효과가 불완전했음에도 왜 계속 쌓았을까. 답은 단순하다. 장성은 군사적 효율성 이전에 정치적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권력은 실효성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보이는 질서, 보이는 경계가 필요하다. 장성은 제국이 스스로에게 보내는 선언문이었다. “우리는 여기까지다.”
명나라 시기 벽돌로 재건된 장성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를 만들었다. 감시탑과 봉수대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정보 체계였다. 연기와 불빛은 위기를 중앙으로 전달했다. 장성은 물리적 장벽이면서 동시에 통신망이었다. 경계는 단절이 아니라 연결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제 시선을 현재로 옮겨 보자. 장성은 더 이상 군사 시설이 아니다. 매년 수천만 명이 찾는 관광 자산이며, 국가 이미지를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2007년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선정에서 이름을 올린 이후, 장성은 글로벌 브랜드가 됐다. 과거의 공포가 오늘의 경제가 된 셈이다. 제국의 방어선은 세계인을 초대하는 길로 바뀌었다.
그러나 장성은 여전히 질문을 던진다. 21세기에도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장벽이 세워지고 있다. 국경 장벽, 철조망, 보이지 않는 무역 장벽, 디지털 공간의 방화벽까지. 우리는 여전히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려 한다. 장성은 낡은 유적이 아니라, 반복되는 인간 본성의 거울이다.
성벽 위에 서면 바람이 세차게 분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벽은 장엄하다. 하지만 그 장엄함 아래에는 두려움과 노동, 통제와 동원이 켜켜이 쌓여 있다. 불가사의는 찬탄의 대상이기 전에 질문의 대상이어야 한다. 만리장성은 위대한 건축인가, 아니면 불안을 제도화한 구조물인가.
어쩌면 정답은 둘 다일 것이다. 제국은 두려움 속에서 벽을 세웠고, 그 벽은 시간이 흐르며 국가의 얼굴이 됐다. 경계는 이렇게 건축이 되고, 건축은 다시 정체성이 된다. 만리장성은 돌로 만든 성벽이 아니라, 국가가 스스로를 정의하는 방식의 기록이다.
다음 편에서는 사막의 붉은 협곡 속으로 들어간다. 벽 대신 은폐를 선택한 도시, 페트라는 어떻게 생존했고, 어떻게 사라졌다가 다시 세계의 무대 위로 올라섰는지 살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