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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7대 불가사의 기획⑤] 왜 사랑은 무덤이 되었는가 – 타지마할

애도는 어떻게 영원이 되었나
슬픔을 대리석에 봉인한 제국의 감정

[뉴스트래블=정국환 기자] 1631년, 제국의 황후가 세상을 떠났다. 열네 번째 아이를 낳다 숨진 아르주망드 바누 베굼, 후에 뭄타즈 마할이라 불린 여인이다. 그녀의 죽음 앞에서 황제는 무너졌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1년 뒤, 거대한 공사가 시작됐다. 그 결과가 오늘날 인도 아그라에 서 있는 타지마할이다.

 

이 건축물은 흔히 ‘사랑의 상징’으로 불린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낭만의 기념비가 아니다.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선택한 방식은 감정을 사적인 영역에 두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애도를 제국의 건축으로 확장했다. 슬픔은 궁정 안에 머물지 않고, 도시의 풍경이 되었다.

 

 

타지마할은 무덤이다. 그러나 동시에 권력의 선언문이다. 순백의 대리석, 정교한 상감 세공, 대칭으로 설계된 정원과 수로. 모든 요소가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 이슬람 전통의 천국 정원을 구현한 차하르바그 구조는 사후 세계의 질서를 상징한다. 사랑은 종교적 상징과 제국의 미학 속에서 재구성된다.

 

공사에는 수만 명의 장인이 동원됐다.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인도 각지에서 기술자들이 모였다. 값비싼 보석과 대리석은 광대한 제국의 네트워크를 통해 운반됐다. 한 사람을 위한 무덤이었지만, 실상은 제국 전체의 자원을 집중한 프로젝트였다. 애도는 곧 통치 능력의 과시였다.

 

흥미로운 점은 빛이다. 타지마할은 시간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새벽에는 옅은 분홍빛, 낮에는 눈부신 흰색, 황혼에는 황금빛으로 물든다. 달빛 아래에서는 푸른 기운이 감돈다. 건축은 고정돼 있지만, 감정은 빛에 따라 변주된다. 사랑은 영원하지만, 그 표정은 끊임없이 달라진다는 듯이.

 

그러나 이 낭만적 서사 뒤에는 정치의 그림자도 있다. 샤 자한은 말년에 아들 아우랑제브에게 폐위돼 아그라 성에 유폐된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그는 강 건너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생을 마감했다. 제국의 절정에서 세운 기념비가, 결국 황제 개인에게는 도달할 수 없는 풍경이 된 셈이다. 권력과 사랑은 끝까지 같은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타지마할은 이후 수세기를 건너며 의미를 바꿔왔다. 식민지 시대에는 동양의 이국적 상징이 되었고, 독립 이후에는 인도의 국가적 브랜드가 됐다. 오늘날 수많은 여행자가 그 앞에서 사진을 남긴다. 사적인 사랑의 서사는 세계적 관광의 상징으로 확장됐다. 감정은 다시 한 번 재해석된다.

 

이 건축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왜 사랑은 이렇게 거대한 형식을 필요로 했는가. 아마도 황제에게 사랑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이름을 남기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무덤은 죽음을 기념하지만, 동시에 존재를 연장한다. 타지마할은 슬픔을 통해 시간을 이기려는 시도였다.

 

만리장성이 경계를 세웠고, 페트라가 자신을 숨겼으며, 콜로세움이 군중을 모았다면, 타지마할은 감정을 돌로 굳혔다. 권력은 군사력과 기술, 조직력뿐 아니라 감정의 형식까지 설계했다. 제국은 사랑조차 정치적으로 남겼다.

 

흰 대리석 위로 오늘도 빛이 흐른다. 수로에는 돔의 형상이 뒤집혀 비친다. 실체와 반영, 삶과 죽음, 사랑과 권력이 겹쳐진다. 타지마할은 말한다. 감정은 사라지지만, 형식은 남는다고. 그리고 그 형식이야말로 제국이 선택한 영원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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