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여름 오후, 바닥에서 물줄기 26개가 솟는다. 아이들이 분수 사이를 뛰어다니고 관광객들이 돔을 올려다본다. 1902년 완공된 베른 연방궁 앞 광장 풍경이다. 분수 뒤에 서 있는 녹색 돔 건물에서는 스위스의 국민투표 안건과 연방 법안이 논의된다. 관광객이 사진을 찍는 이 광장은 동시에 국가 정치의 현관이다.
베른 구시가지는 198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아케이드가 이어지는 중세 도시 한가운데 연방궁이 자리한다. 인구 약 890만 명의 스위스는 이곳에서 국가 정책을 조율한다. 알프스 산악국가의 정치 중심이 관광 도시 풍경 속에 놓여 있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연방궁 앞 테라스에 서면 아레 강이 반원형으로 도시를 감싼다. 베른은 1191년 체링겐 공작 베르톨트 5세가 세운 도시다. 스위스는 공식 수도라는 표현 대신 ‘연방 도시’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권력 집중을 피하려는 정치 문화 때문이다.
건물 안에는 양원 의회가 들어 있다. 인구 비례로 선출되는 국민의회 200석과 칸톤 대표로 구성된 전주의회 46석이다. 인구 1만 명 수준의 산악 칸톤도 동일한 대표권을 갖는다. 연방궁은 분권 국가의 정치 구조가 실제로 작동하는 장소다.
여행객이 방문하는 이유도 이 점에 있다. 연방궁은 일정 기간 무료 내부 투어를 운영한다. 방문객은 회의장과 돔 내부를 직접 볼 수 있다. 관광 공간과 정치 공간이 겹쳐 있는 사례다.
이 장소가 만들어진 배경과 과정
스위스 연방의 시작은 1291년 알프스 통로를 지키기 위해 체결된 방위 동맹이다. 우리·슈비츠·운터발덴 세 지역 협약은 이후 1291년 스위스 연방 창설로 불린다. 산악 지역 공동 방어 체제였다.
유럽 질서는 1815년 빈 회의에서 재편됐다. 이 회의는 스위스의 영구 중립을 국제적으로 승인했다. 군사 동맹에 속하지 않는 외교 노선이 확립됐다.
1848년 연방 헌법 제정 이후 스위스는 현대 연방 국가가 됐다. 베른이 정치 중심지로 선택됐고 연방궁 건설이 추진됐다. 1894년 착공, 1902년 완공된 돔 건물은 새 국가 체제를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
이 장소가 겪은 변화와 그 결과
연방궁 앞 광장은 스위스 정치 문화의 특징을 보여준다. 국민투표 캠페인 포스터가 광장 주변에 붙고 시민 토론이 이어진다. 1848년 이후 연방 국민투표는 600회 이상 실시됐다. 주요 정책이 시민 투표로 결정되는 구조다.
정치 참여는 점진적으로 확대됐다. 1971년 여성 참정권이 도입되면서 선거권이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주민발의 제도와 국민투표가 정치 결정 과정의 핵심 장치가 됐다.
베른의 관광 풍경 속에서 이런 정치 문화가 이어진다. 관광객이 사진을 찍는 바로 그 장소에서 시민들은 정책을 놓고 토론한다.
오늘, 이 장소가 갖는 의미
스위스 경제는 고부가 산업 중심이다. 2023년 1인당 GDP는 약 9만 달러 수준이다. 제약·식품·정밀 기계 산업이 세계 시장을 이끈다. 노바티스와 네슬레 같은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활동한다.
최근에는 중립 정책이 새로운 논쟁을 낳고 있다. 2022년 러시아 제재 참여 이후 무기 재수출과 외교 노선 문제가 정치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런 정책 논의 역시 연방궁에서 시작된다.
베른을 찾는 관광객은 중세 도시 풍경을 본다. 그러나 그 풍경의 중심 건물에서는 스위스의 외교와 경제 전략이 동시에 논의된다.
이 공간이 남긴 국가의 얼굴
베른 연방궁은 세 시점을 품는다. 1291년 동맹, 1848년 연방 헌법, 1902년 연방궁 완공이다. 산악 동맹은 현대 연방 국가가 됐고 그 구조가 건물로 남았다.
광장에서 솟는 26개 분수는 26개 칸톤을 상징한다. 권력은 중앙에 집중되지 않는다. 지역과 시민 사이에 분산된다.
관광객이 쉬어 가는 이 광장은 스위스 정치 문화의 무대다. 베른 연방궁은 풍경 속에서 작동하는 국가 구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