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주연 기자]관광은 이제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공간의 서사를 소비하는 행위'로 진화하고 있다. 올봄 이탈리아 관광청(ENIT SpA)이 내놓은 카드는 명확하다. 미디어가 발굴한 감성적 배경지에 수백 년을 이어온 로컬의 전통을 덧입히는 전략이다. 그 중심에는 로마 근교의 작은 소도시들이 있다.
미디어가 숨을 불어넣은 ‘박제된 도시’의 부활
최근 한국 드라마의 배경지로 알려지며 젊은 여행객들의 성지로 떠오른 치비타 디 바뇨레조(Civita di Bagnoregio)는 한때 ‘죽어가는 마을’로 불렸다. 응회암 절벽 위 고립된 이 마을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에 영감을 주었을 만큼 비현실적인 경관을 자랑한다.
주목할 점은 이 인근 비테르보(Viterbo) 역사 지구가 보여주는 변주다. 4월 말 열리는 ‘산 펠레그리노 인 피오레’는 중세의 차가운 석조 건축물 위로 화려한 꽃의 생명력을 덧입힌다. 미디어가 시각적 호기심을 자극했다면, 지역 축제는 그 공간에 머물러야 할 이유를 제공하며 박제됐던 중세 도시에 실질적인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248년의 집념, 2000m²의 꽃 카펫이 증명하는 로컬의 힘
공간의 서사를 완성하는 또 다른 축은 젠자노(Genzano)의 ‘인피오라타’다. 올해로 248회를 맞는 이 축제는 단순히 꽃을 전시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40여 종의 식물과 꽃잎을 활용해 거리 전체를 거대한 화폭으로 바꾸는 이 작업은 마을 전체가 일 년 내내 준비하는 거대한 공동체 프로젝트다.
여기에 유럽 연합의 지리적 표시 보호(PGI) 인증을 받은 ‘카사레치오’ 빵과 같은 미식 자산이 결합한다. 밤나무 화덕에서 구워낸 지역의 고유한 맛은 여행객들에게 ‘그곳이 아니면 안 되는’ 대체 불가능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는 이탈리아 관광청이 강조하는 ‘재생 관광’의 핵심 모델이기도 하다.
2779년 전의 공학, 현대의 감성과 맞닿다
기획의 정점은 로마 건국 기념일(4월 21일)에 나타나는 판테온의 ‘빛의 설계’다. 2779년 전 설계된 돔 천장의 구멍을 통해 정오의 햇빛이 입구 문을 비추는 장관은, 고대 공학이 현대인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극적인 몰입형 경험이다.
이바나 옐리니크 이탈리아 관광청 CEO는 “관광은 지역 경제의 필수 원동력이자 사회경제적 복지를 창출하는 도구”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전년 대비 37% 급증한 올리브 관광 수치는 여행자들이 더 이상 화려한 랜드마크가 아닌, 땅과 맞닿은 지역의 본질적인 매력에 반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탈리아의 봄은 단순히 계절의 변화가 아닌, 낡은 유산에 미디어의 감성과 정책적 재생을 결합해 가치를 재창조하는 현장이다. 드라마 속 풍경에 매료되어 떠난 여행객들이 248년 된 꽃 카펫과 고대 공학의 경이로움을 만나는 순간, 관광은 비로소 산업을 넘어 문화적 연대로 완성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