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이스탄불 구시가지에서 아야 소피아를 마주하는 순간, 터키라는 국가는 하나의 문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이 건물은 교회였고, 모스크였으며, 박물관이었다가 다시 모스크가 됐다. 기능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공간은 남았다. 아야 소피아는 한 국가가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조정해왔는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터키는 제국의 붕괴 위에서 탄생한 공화국이다. 과거를 완전히 지우지 못했고, 그렇다고 그대로 유지하지도 않았다. 선택과 보류, 전환이 반복됐다. 아야 소피아는 그 복잡한 역사적 선택이 응축된 장소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아야 소피아는 한 시대의 시작보다 전환의 순간을 상징한다. 비잔틴 제국의 대성당이었고, 오스만 제국의 정복 이후 모스크로 전환됐다. 권력이 바뀔 때마다 공간의 의미는 다시 정의됐다. 터키의 역사처럼 연속성과 단절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 건물은 파괴되지 않았다. 정복자는 이전 문명의 상징을 남겼고, 의미만 바꿨다. 이는 제국이 자신감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공간은 승자의 언어로 다시 읽혔다. 공화국 수립 이후 선택은 달라졌다. 아야 소피아는 박물관이 됐다. 종교를 국가로부터
[뉴스트래블=박주연 기자] 유럽 대륙의 중심에서 독일은 늘 ‘안정된 국가’의 상징처럼 언급된다. 치밀하게 설계된 도시 구조, 정확한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교통망, 그리고 법과 규칙이 일상을 지탱하는 사회. 그러나 여행자의 시선에서 독일은 단순히 안전한 나라로만 규정되기엔 미묘한 층위를 지닌다. 겉으로 드러난 질서 아래에는 이민 문제, 극단주의, 그리고 관광객을 노린 범죄가 교차하며, 준비 없는 여행자에게는 예상치 못한 긴장을 안길 수 있다. 치안과 안전 상황독일은 유럽 내에서도 전반적인 치안 수준이 양호한 국가로 평가된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강력 범죄는 드문 편이며, 경찰 대응 역시 체계적이다. 다만 최근 수년간 대도시를 중심으로 소매치기와 절도 범죄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기차역, 공항, 관광 명소, 대형 쇼핑센터에서는 여행자를 노린 범죄가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뮌헨과 같은 대도시는 안전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많은 사건이 발생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정치·사회적 긴장과 테러 가능성독일 사회는 정치적으로 안정돼 있지만, 완전히 긴장에서 자유로운 국가는 아니다. 이민자와 난민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 일부 지역에서 나타나
[뉴스트래블=박주연 기자] 북유럽 복지국가의 상징으로 불리는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안전하다’는 이미지 뒤에는 관광객을 노린 소매치기와 절도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현실도 공존한다. 덴마크 여행은 방심이 아닌 균형 잡힌 경계 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치안과 안전 상황 덴마크 전반의 범죄율은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이다. 살인이나 강력 범죄, 테러 위협 가능성은 크지 않으며 정치적 불안이나 내전 위험도 사실상 없다. 다만 최근 수년간 코펜하겐을 중심으로 관광객을 노린 소매치기와 날치기 범죄가 증가하는 추세다. 범죄의 대부분은 조직적 폭력보다는 순간적인 방심을 노린 절도에 가깝다. 시청 앞 광장이나 국회의사당 주변에서 열리는 집회와 시위는 대체로 평화적으로 진행되지만, 다양한 집단이 모이는 대규모 군중 상황에서는 예기치 못한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현지에서는 시위 현장에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기본적인 안전 수칙으로 통한다. 주요 위험 지역과 사례 코펜하겐 중앙역과 공항은 대표적인 소매치기 발생 지점이다. 여러 명이 동시에 말을 걸어 주의를 분산시키는 방식으로 가방이나 지갑을 훔치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보고된다. 도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파리에서 바스티유를 찾으려 하면 성은 보이지 않는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기념 기둥이 서 있고, 그 주변을 일상이 흐른다. 그러나 프랑스를 이해하려는 시선은 여전히 이 자리에 멈춘다. 바스티유는 존재하지 않지만, 프랑스 국가를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이곳은 왕권의 상징이 무너진 자리다. 프랑스 혁명은 건축물을 파괴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공간의 기능이 사라진 뒤 의미가 더 커졌다. 바스티유 광장은 국가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무대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바스티유는 원래 감옥이었다. 왕권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던 장소였다. 시민에게 이 건물은 억압의 시각적 상징이었다. 그래서 혁명은 이곳을 선택했다. 1789년 7월 14일, 시민들은 바스티유를 습격했다. 군사적 의미는 크지 않았지만 상징성은 결정적이었다. 권력이 더 이상 신성하지 않다는 선언이었다. 국가는 이 장면에서 방향을 바꿨다. 프랑스가 이 장소를 계속 기억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혁명의 시작이 특정 인물이나 제도가 아니라 공간에 각인됐기 때문이다. 국가의 탄생은 사건이 아니라 장면으로 남았다. 바스티유는 그 장면의 이름이다. 오늘날 프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이탈리아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이미지는 로마다. 수많은 유적과 광장이 겹쳐진 이 도시는 하나의 박물관처럼 보이지만, 그 중심에는 포로 로마노가 있다. 관광객에게 이곳은 폐허로 남은 고대 유적이지만, 국가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포로 로마노는 이탈리아라는 국가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에 이미 공공의 개념이 작동하던 공간이었다. 로마 제국은 사라졌지만, 그 공간은 폐기되지 않았다. 국가 이전에 형성된 질서와 공공성은 이후 수많은 정치 체제를 거치며 기준점으로 남았다. 이탈리아는 통일이 늦은 나라였지만, 국가를 설명하는 장면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포로 로마노는 그 출발점에 해당하는 장소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포로 로마노는 로마 공화정과 제정의 핵심 공간이었다. 정치, 종교, 사법, 상업이 한곳에 모여 작동하던 장소였다. 국가라는 개념이 정립되기 전부터 공공의 삶은 이미 공간으로 구현돼 있었다. 이 점에서 포로 로마노는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국가 원형의 증거다. 이곳에서 시민은 권력을 목격했다. 원로원이 자리했고, 재판이 열렸으며, 공식 의례가 반복됐다. 권력은 폐쇄된 궁전이 아니라 열린 광장에서
[뉴스트래블=차우선 기자] 유럽 동남부 발칸반도, 이탈리아와 마주한 아드리아해. 투명한 바다 위로 1244개의 섬이 흩뿌려진 나라 크로아티아는 중세 도시 두브로브니크와 드라마 ‘왕좌의 게임’ 촬영지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나라를 처음 찾은 여행자들이 가장 당황하는 순간은 풍경이 아니라, 지도 앱을 켰을 때다. ‘방귀 섬’, ‘팬티 마을’, ‘브래지어 마을’, 심지어 ‘할머니 엉덩이 섬’까지. 장난처럼 보이는 이 지명들은 실제 크로아티아 지도에 존재한다. 농담 같지만, 모두 실존하는 이름이다. 아드리아해 한가운데 147개의 섬으로 이뤄진 코르나티 국립공원. 이 군도에 속한 ‘바비나 구지차(Babina Guzica)’는 크로아티아어로 번역하면 ‘할머니 엉덩이’다. 위에서 내려다본 섬의 둥글고 갈라진 형태가 이름이 됐다. ‘벨라 프르데자(Vela Prdeža)’, 일명 ‘큰 방귀 섬’은 바위 틈으로 바람이 통과할 때 실제로 묘한 소리가 난다고 전해진다. 두브로브니크 인근의 작은 마을 가치체(Gaćice)는 현대 크로아티아어로 ‘팬티’라는 뜻으로 읽힌다. 내륙으로 들어가면 그루드냐크(Grudnjak), 즉 ‘브래지어 마을’도 만난다. 주민 수 20여 명에 불
[뉴스트래블=편집국] 땅 위의 풍경은 평범하다.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고원의 작은 마을, 카파도키아 지역의 데린쿠유. 관광객이 오가기 전까지 이곳은 오랫동안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한 농촌이었다. 그러나 마을 바닥 아래, 일상의 표면을 몇 미터만 벗어나면 전혀 다른 세계가 시작된다. 햇빛이 닿지 않는 깊이에서, 사람들은 한때 도시를 이루며 살아갔다. 데린쿠유 지하도시는 단순한 은신처가 아니다. 확인된 깊이만 약 60미터, 층수는 최소 8층 이상이다. 일부 학자들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하부 공간이 더 존재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이곳은 일시적으로 숨기 위해 만든 공간이 아니라, 수천 명이 장기간 거주하도록 설계된 완전한 지하 생활 구조였다. 도시의 시작 시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히타이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주장도 있지만, 현재 가장 신뢰받는 견해는 기원전 이후 형성된 지하 공간이 비잔틴 시대에 대규모로 확장됐다는 것이다. 특히 7~10세기, 외부 침입과 종교적 박해가 반복되던 시기, 이 도시는 생존을 위한 최후의 선택지였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통로는 급격히 좁아진다. 이는 불편함이 아니라 방어를 위한 의도적 설계다. 한 사람이 겨우 몸을 숙
[뉴스트래블=편집국] 길은 항상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제방 위로 차량이 오가고, 섬은 육지의 연장처럼 놓여 있다. 그러나 몽생미셸에서 길은 영구적인 약속이 아니다. 바다는 하루 두 번, 정확한 시간에 도착해 그 약속을 철회한다. 물이 차오르는 순간, 섬은 다시 섬이 되고 인간은 선택의 결과만을 남긴다. 시간표를 가진 바다몽생미셸이 위치한 노르망디 해안은 유럽에서도 조수 간만의 차가 가장 극적인 지역이다. 최대 14미터에 이르는 조차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지형 전체를 바꾸는 힘이다. 썰물 때 드러나는 모래 평원은 몇 시간 동안 육지와 섬을 연결하지만, 밀물이 시작되면 그 연결은 조용히 해체된다. 물이 차오르는 속도는 빠르다. 파도처럼 몰려오지 않고, 사방에서 동시에 상승한다. 방향 감각은 무력해지고, 조금 전까지 ‘길’이었던 공간은 경계 없는 수면으로 변한다. 몽생미셸 인근에서 반복돼 온 조수 갇힘 사고는 이 속도를 과소평가한 결과였다. 단단해 보이는 모래의 함정섬 주변의 모래 평원은 안정적인 지반이 아니다. 조류와 강물이 뒤엉키며 형성된 이 지역에는 유사가 광범위하게 분포한다. 표면은 마른 평원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발을 디디
[뉴스트래블=차우선 기자] 아드리아해 위에 떠 있는 작은 섬 하나가 전 세계 연인들의 버킷리스트가 됐다.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해안의 갈레슈냐크 섬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완벽한 하트 모양을 그려내며, 자연이 빚은 기적 같은 풍경과 수천 년 역사를 품은 흔적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사랑과 낭만, 그리고 인류의 오래된 이야기가 교차하는 무대다. 로맨스를 품은 하트섬갈레슈냐크는 면적 13만㎡ 규모의 작은 섬이지만, 본토에서 배로 20분이면 닿을 수 있는 뛰어난 접근성 덕분에 커플 여행과 허니문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CNN과 BBC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섬’으로 소개한 이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비욘세가 생일을 맞아 방문하면서 ‘사랑의 섬’이라는 별명이 더욱 널리 퍼졌다. 섬에 도착하면 조약돌 해변에 보트를 대고 해안선을 따라 산책을 즐길 수 있다. 해안선 길이가 약 1.55km에 불과해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섬 전체를 한 바퀴 돌 수 있으며, 최고 지점도 해발 36m 정도라 가볍게 오르내리기 좋다. 올리브 나무와 지중해 관목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섬의 끝에 이른다. 주변 바다는 수심 10m까지
[뉴스트래블=편집국] 파리를 걷는 사람은 누구나 도시가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화려함을 떠받치는 지하 깊은 곳에는, 전혀 다른 표정의 파리가 있다. 계단 131개를 내려가면 도시는 갑자기 어두워지고, 공기는 서늘해지며, 수 세기 동안 이동한 뼈들이 미로처럼 이어진 광대한 세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빛 없는 공간에서 인간의 흔적은 돌이 아니라 해골과 뼈로 쌓여 있고, 기묘한 침묵이 그 모든 것을 지탱한다. 그곳이 바로 파리 카타콤이다. 도시 아래의 또 다른 도시파리 남부 몽파르나스 거리 아래에는 지상과 전혀 다른 풍경이 있다. 천장에는 오래된 채석장의 흔적이 얼룩처럼 남아 있고, 벽면에는 습기가 스며든 석회암이 층을 이루며 무너질 듯 이어져 있다. 지표면의 밝은 파리와 달리 이곳의 공기는 무겁고 촉촉하며, 한 걸음 떼는 소리조차 길게 울린다. 18세기 말까지 이 공간은 단순한 ‘갱도’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파리의 죽음이 이곳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좁은 통로를 따라 걷다 보면 통로의 경계가 갑자기 바뀐다. 석벽을 대신해 사라지는 것은 수백만 구의 인간 뼈다. 정교하게 쌓인 대퇴골과 두개골이 마치 벽돌처럼 겹겹이 쌓여 이어지는데, 이 배열은 장식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