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6 (금)

  • 맑음동두천 -6.4℃
  • 맑음강릉 -0.9℃
  • 맑음서울 -6.4℃
  • 맑음대전 -2.4℃
  • 맑음대구 -2.0℃
  • 맑음울산 -1.8℃
  • 구름조금광주 -2.1℃
  • 맑음부산 -0.4℃
  • 흐림고창 -2.8℃
  • 구름많음제주 2.5℃
  • 맑음강화 -6.7℃
  • 맑음보은 -4.6℃
  • 맑음금산 -3.2℃
  • 구름조금강진군 -0.1℃
  • 맑음경주시 -2.6℃
  • 맑음거제 -1.0℃
기상청 제공

[금단의 여행지–해외편⑱] 땅속으로 가라앉은 왕국…터키 데린쿠유 지하도시

[뉴스트래블=편집국] 땅 위의 풍경은 평범하다.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고원의 작은 마을, 카파도키아 지역의 데린쿠유. 관광객이 오가기 전까지 이곳은 오랫동안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한 농촌이었다. 그러나 마을 바닥 아래, 일상의 표면을 몇 미터만 벗어나면 전혀 다른 세계가 시작된다. 햇빛이 닿지 않는 깊이에서, 사람들은 한때 도시를 이루며 살아갔다.

 

데린쿠유 지하도시는 단순한 은신처가 아니다. 확인된 깊이만 약 60미터, 층수는 최소 8층 이상이다. 일부 학자들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하부 공간이 더 존재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이곳은 일시적으로 숨기 위해 만든 공간이 아니라, 수천 명이 장기간 거주하도록 설계된 완전한 지하 생활 구조였다.

 

 

도시의 시작 시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히타이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주장도 있지만, 현재 가장 신뢰받는 견해는 기원전 이후 형성된 지하 공간이 비잔틴 시대에 대규모로 확장됐다는 것이다. 특히 7~10세기, 외부 침입과 종교적 박해가 반복되던 시기, 이 도시는 생존을 위한 최후의 선택지였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통로는 급격히 좁아진다. 이는 불편함이 아니라 방어를 위한 의도적 설계다. 한 사람이 겨우 몸을 숙여 통과할 수 있는 폭, 그리고 통로 중간중간 설치된 거대한 원형 석문. 이 돌문은 외부 침입자가 진입할 경우 안쪽에서 굴려 막도록 만들어졌다. 문 하나의 무게는 수백 킬로그램에 달한다.

 

도시 내부에는 주거 공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공동 주방, 식량 저장고, 포도주와 올리브유를 보관하던 저장실, 가축을 위한 공간까지 구분돼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기 시스템이다. 수직으로 뚫린 환기구는 지표와 연결돼 있으며, 일부는 우물 역할도 겸했다. 깊은 지하에서도 공기가 순환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치밀한 구조 덕분이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침묵과 절제 위에 세워졌을 것이다. 불빛은 최소화됐고, 연기는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관리됐다. 소음은 곧 위험 신호였다. 데린쿠유의 어둠은 공포를 조성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발각되지 않기 위한 조건이었다. 아이들은 지상에서 뛰놀 수 없었고, 사람들은 낮과 밤의 구분 없이 시간을 보냈다. 외부의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혹은 위협이 지나갈 때까지, 이 도시는 닫힌 채로 유지됐다. 데린쿠유는 일상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전쟁 상태를 전제로 한 도시였다.

 

지하도시가 ‘금단의 여행지’가 된 이유는 단순히 깊고 어둡기 때문이 아니다. 이곳은 인간이 지표에서의 삶을 포기할 만큼의 위협을 실제로 마주했을 때,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도망이 아니라 구조를 바꾼 선택, 위가 아니라 아래로 내려간 문명이다. 오늘날 데린쿠유는 일부 구간만 공개돼 있다. 안전 문제와 보존을 이유로 대부분의 통로는 봉인돼 있다. 이는 단순한 관광 제한이 아니라, 이 도시가 여전히 ‘완결되지 않은 기록’이기 때문이다. 모든 공간이 밝혀지지 않았고, 모든 층이 이해된 것도 아니다.

 

땅속 깊이 내려가면, 이곳이 폐허라는 느낌은 사라진다. 대신 남아 있는 것은 설계의 흔적이다. 사람이 살기 위해 얼마나 멀리 내려갈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얼마나 치밀했는지를 말없이 증명하는 구조물들이다. 데린쿠유는 묻혀 있는 과거가 아니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공간을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가장 극단적인 사례다. 이 도시는 무너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모습을 감춘 채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인간의 두려움과 지혜는 여전히 같은 깊이에 머물러 있다.

포토·영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