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이스탄불 구시가지에서 아야 소피아를 마주하는 순간, 터키라는 국가는 하나의 문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이 건물은 교회였고, 모스크였으며, 박물관이었다가 다시 모스크가 됐다. 기능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공간은 남았다. 아야 소피아는 한 국가가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조정해왔는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터키는 제국의 붕괴 위에서 탄생한 공화국이다. 과거를 완전히 지우지 못했고, 그렇다고 그대로 유지하지도 않았다. 선택과 보류, 전환이 반복됐다. 아야 소피아는 그 복잡한 역사적 선택이 응축된 장소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아야 소피아는 한 시대의 시작보다 전환의 순간을 상징한다. 비잔틴 제국의 대성당이었고, 오스만 제국의 정복 이후 모스크로 전환됐다. 권력이 바뀔 때마다 공간의 의미는 다시 정의됐다. 터키의 역사처럼 연속성과 단절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 건물은 파괴되지 않았다. 정복자는 이전 문명의 상징을 남겼고, 의미만 바꿨다. 이는 제국이 자신감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공간은 승자의 언어로 다시 읽혔다.
공화국 수립 이후 선택은 달라졌다. 아야 소피아는 박물관이 됐다. 종교를 국가로부터 분리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공간은 세속주의의 상징으로 기능했다.
그래서 아야 소피아는 특정 종교의 건축물이 아니다. 국가가 어떤 원칙을 채택해왔는지가 기록된 장소다. 터키의 정체성은 이 건물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장소가 만들어진 배경과 과정
아야 소피아는 6세기 비잔틴 제국 시기에 건설됐다. 제국의 권력과 기독교 세계의 중심성을 과시하기 위한 건축이었다. 당시 기술과 자원이 총동원됐다. 공간 자체가 제국의 위상을 증명했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이스탄불 정복은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아야 소피아는 즉시 모스크로 바뀌었다. 첨탑이 추가되고 내부 장식이 조정됐다. 그러나 건물의 구조는 유지됐다.
이 선택은 전략적이었다. 오스만 제국은 이전 문명을 부정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질서 안으로 흡수했다. 공간은 단절이 아닌 중첩의 방식으로 이어졌다.
1923년 공화국 수립 이후 또 다른 재해석이 이뤄졌다. 터키는 아야 소피아를 박물관으로 전환했다. 이는 세속 국가를 선언하는 상징적 조치였다. 공간은 정치적 메시지가 됐다.
이 장소가 겪은 변화와 그 결과
아야 소피아는 기능 변화와 함께 논쟁의 중심에 서왔다. 종교 공간에서 국가 유산으로, 다시 종교 공간으로 이동했다. 변화는 반복됐고, 그 자체가 역사였다. 터키는 결정을 통해 자신을 드러냈다.
박물관 시절 아야 소피아는 세계인의 공간이 됐다. 특정 신앙을 넘어 인류 문명의 유산으로 인식됐다. 터키는 국제 사회와 연결되는 이미지를 얻었다. 개방성과 세속성이 강조됐다.
2020년 모스크 전환은 또 다른 국면을 만들었다. 세속주의와 종교 정체성의 긴장이 다시 표면화됐다. 공간은 정치적 선택의 결과로 읽혔다. 아야 소피아는 여전히 현재형이다.
이 변화들은 터키 국가의 복합성을 보여준다. 하나의 정체성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국가는 상황에 따라 방향을 조정해왔다. 그 흔적이 이 건물에 남아 있다.
오늘, 이 장소가 갖는 의미
오늘날 아야 소피아는 모스크로 기능한다. 동시에 세계 각국의 방문객이 찾는다. 종교와 관광, 일상이 한 공간에 공존한다. 긴장은 관리되는 상태로 유지된다.
이곳은 터키 사회의 논쟁이 집약된 장소다. 제국의 기억과 공화국의 가치가 충돌한다. 국가는 그 충돌을 조정하며 존속한다. 아야 소피아는 그 과정의 무대다.
터키는 이 공간을 통해 자신을 설명한다. 과거를 완전히 지우지도, 그대로 보존하지도 않는다. 선택적 계승이 국가 운영의 방식이다. 공간은 그 결과물이다.
아야 소피아는 완결된 유산이 아니다. 의미는 계속 갱신된다. 국가는 여전히 방향을 탐색 중이다. 그 움직임이 이곳에 반영된다.
이 공간이 남긴 국가의 얼굴
아야 소피아는 터키 국가의 얼굴이다. 제국의 기억과 공화국의 원칙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공존한다. 국가는 타협과 조정을 통해 유지돼왔다. 이 공간은 그 현실을 숨기지 않는다.
이 장소를 이해하면 터키가 보인다. 단절이 아니라 중첩으로 역사를 이어온 나라다. 선택은 언제나 정치적이었다. 아야 소피아는 터키라는 국가가 스스로를 드러내온 가장 선명한 장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