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편집국] 파리를 걷는 사람은 누구나 도시가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화려함을 떠받치는 지하 깊은 곳에는, 전혀 다른 표정의 파리가 있다. 계단 131개를 내려가면 도시는 갑자기 어두워지고, 공기는 서늘해지며, 수 세기 동안 이동한 뼈들이 미로처럼 이어진 광대한 세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빛 없는 공간에서 인간의 흔적은 돌이 아니라 해골과 뼈로 쌓여 있고, 기묘한 침묵이 그 모든 것을 지탱한다. 그곳이 바로 파리 카타콤이다.
도시 아래의 또 다른 도시
파리 남부 몽파르나스 거리 아래에는 지상과 전혀 다른 풍경이 있다. 천장에는 오래된 채석장의 흔적이 얼룩처럼 남아 있고, 벽면에는 습기가 스며든 석회암이 층을 이루며 무너질 듯 이어져 있다. 지표면의 밝은 파리와 달리 이곳의 공기는 무겁고 촉촉하며, 한 걸음 떼는 소리조차 길게 울린다. 18세기 말까지 이 공간은 단순한 ‘갱도’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파리의 죽음이 이곳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좁은 통로를 따라 걷다 보면 통로의 경계가 갑자기 바뀐다. 석벽을 대신해 사라지는 것은 수백만 구의 인간 뼈다. 정교하게 쌓인 대퇴골과 두개골이 마치 벽돌처럼 겹겹이 쌓여 이어지는데, 이 배열은 장식이 아니라 공간을 정리하기 위한 ‘구조물’에 가깝다. 조명은 노란빛으로 낮게 깔리고, 그 사이에서 인간의 형체는 사라지고 모양만 남은 뼈들이 차갑게 빛을 받는다.
600만 구가 남긴 침묵
카타콤은 파리를 떠도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했다. 18세기 후반, 도심 공동묘지는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악취는 거리 위로 가득 올라왔다. 결국 시는 인간의 유해를 지하 채석장으로 옮기기 시작했고, 그 결과 파리의 ‘아래’에는 파리의 또 다른 기록이 쌓이게 됐다.
이곳에서 놀라운 건 규모만이 아니다. 더 깊이 들어갈수록 공간은 사적인 기념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인류학적 건축물’처럼 보인다. 이름이 지워진 사람들, 시대가 지워진 뼈들이 바람도 없는 통로를 따라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조용한데, 그 침묵은 공백이 아니라 ‘축적된 시간’의 무게이다. 인간이 사라진 뒤에도 남는 것은 결국 비슷한 형태의 뼈들이며, 도시가 계속 살아남기 위해 숨겨야 했던 흔적들이다.
금단의 공간이 된 이유
카타콤은 관광객에게 열려 있지만, 동시에 ‘금단의 공간’으로 여겨진다. 이는 단순히 분위기가 기이해서가 아니다. 19세기부터 현대까지 이곳은 수많은 침입자, 불법 탐험가, 지하 예술가들의 활동 무대였다. 공식 루트 외의 구역은 미로처럼 얽혀 있어 길을 잃기 쉽고, 수압이나 지반 변화에 따른 붕괴 위험도 상존한다.
실제로 출입이 금지된 구역은 200km가 넘고, 지금도 ‘카타필(지하 탐험가)’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몰래 이곳을 드나든다. 돌이 아니라 인간의 유해가 쌓인 벽, 지도 없는 수백 개의 분기점, 휴대전화 신호가 닿지 않는 공간. 이 요소들은 여행지라기보다 ‘넘어가면 안 되는 경계’처럼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카타콤에 매혹된다. 죽은 자의 흔적이 살아 움직이는 도시의 구조 안에 결합된다는 사실은, 생과 사가 명확히 분리돼 있다는 우리의 감각을 흔들기 때문이다.
땅속에서 다시 묻는 질문
카타콤을 빠져나올 때 계단을 올라 다시 지상으로 나가면 공기가 갑자기 가볍게 느껴진다. 자동차 소리, 사람의 말소리, 햇빛 - all of it - 은 지하에서의 시간을 빠르게 밀어낸다. 그러나 약간의 이질감이 남는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파리의 아름다움’이 사실 이 음지의 공간과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도시의 생명은 무엇으로 유지되는가. 우리가 지우는 것들은 어디로 가는가. 인간이 만든 공간이 감당하지 못한 것들은 결국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되는가. 파리 카타콤은 이러한 질문을 말 대신 침묵으로 남긴다. 그리고 그 침묵이야말로 이곳을 금단의 여행지로 만드는 가장 깊은 이유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