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도시의 이름은 단순한 명칭이 아니다. 한 나라의 권력, 제국의 이념, 그리고 문명의 중심이었던 시절의 기억을 품고 있다. 베이징과 뉴델리 - 이 두 도시는 ‘제국’이라는 단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수세기 동안 왕조의 권위와 식민의 흔적, 그리고 독립의 열망을 동시에 품은 도시들이다.
‘베이징(北京)’은 문자 그대로 ‘북쪽의 수도’를 뜻하지만, 그 이름이 지닌 무게는 단순한 방향보다 훨씬 크다. 중국 왕조의 중심이자, 국가 권력의 상징으로서 베이징은 시대가 바뀔 때마다 이름의 의미를 다시 써 내려갔다. 반면 ‘뉴델리(New Delhi)’는 제국의 통치를 위해 계획된 도시였지만, 지금은 독립 인도의 심장으로 살아 숨 쉰다. 두 도시는 이름 속에 제국의 흔적을 품고, 오늘의 세계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 베이징, 제국의 중심에서 국민의 수도로
‘베이징(北京)’이라는 이름은 원나라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북쪽의 수도’라는 단순한 지리적 의미였지만, 실상은 제국 권력의 방향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명과 청 왕조는 베이징을 ‘천자의 도시’로 세웠고, 자금성과 천단, 그리고 장대한 성곽은 그 위용을 증명했다.
오늘날 여행자가 자금성의 정문인 오문(午門)을 통과해 천안문 광장으로 향하면, ‘황제의 권력’이 ‘국민의 상징’으로 바뀐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베이징은 제국의 수도에서 사회주의 중국의 정치 중심지로 변했지만, 여전히 이름 속에는 통치와 질서, 중심의 의미가 살아 있다.
골목길 후퉁(胡同)을 걸으면 고즈넉한 회색 벽돌 담장 사이로 인민의 일상이 이어지고, 자금성의 붉은 기둥과 현대식 마천루가 공존하는 스카이라인은 과거의 제국이 어떻게 현재의 국가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준다. 베이징의 이름은 단순한 방향이 아니라, 중심을 지키는 힘의 언어다.

◇ 뉴델리, 제국의 수도에서 민주국가의 심장으로
‘뉴델리(New Delhi)’의 이름은 영국 식민 통치의 산물이었다. 1911년, 인도 제국의 행정 수도를 콜카타(당시 캘커타)에서 옮기며 ‘새로운 델리’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식민권력의 의지로 설계된 도시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뉴델리는 인도 독립과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영국 건축가 루턴스가 설계한 직선의 도로망과 기하학적 광장, 대통령궁(라슈트라파티 바반)과 인디아게이트는 식민 시대의 흔적이자, 동시에 인도가 스스로 재해석한 역사적 공간이다. 여행자가 뉴델리를 걸을 때, 그 길 위에는 제국의 발자취와 독립의 발걸음이 함께 새겨져 있다.
뉴델리는 이름 그대로 ‘새로운 델리’이지만, 그 ‘새로움’은 단지 계획의 결과가 아니라 과거를 이겨내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낸 역사적 갱신의 표현이다. 혼잡한 거리와 향신료 냄새, 릭샤의 경적 소리 속에서, 여행자는 이 도시가 여전히 자신을 새롭게 쓰고 있음을 느낀다.

◇ 이름 속의 제국, 그리고 그 너머
베이징과 뉴델리는 모두 ‘제국의 중심’을 위해 만들어진 이름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두 도시는 그 이름에 새로운 의미를 덧입혔다.
하나는 사회주의 중국의 심장으로, 다른 하나는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의 수도로 변모했다.
이름은 단지 과거를 기억하는 표식이 아니라, 시간을 통과하며 진화하는 언어다. 베이징과 뉴델리는 제국이 남긴 흔적 위에 자신만의 미래를 세우며, 이름이 어떻게 시대의 방향을 바꾸는가를 증명하고 있다.
두 도시는 이제 묻는다. “이름이 우리를 만든 것인가, 우리가 이름을 새로 쓰고 있는가.” 그 질문이야말로 제국의 이름이 남긴 가장 현대적인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