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트래블=정국환 기자] 남쪽 바다의 도시 통영은 오래전부터 ‘한국의 나폴리’로 불렸다. 그러나 최근 여행자들은 이곳을 ‘한국의 산토리니’라 부른다. 바다 위로 겹겹이 쌓인 집, 언덕을 따라 이어지는 골목, 햇살에 반사된 흰색의 담벼락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지중해의 감성을 닮았다.
언덕 마을을 오르다 보면 시야가 트이고, 그 아래로 바다가 펼쳐진다. 골목마다 다른 색의 벽화가 이어지고, 하얀 벽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염분 섞인 향기를 품는다. 통영의 바다는 화려하지 않지만, 그 속에는 느릿한 리듬과 삶의 온기가 있다. 그 여유가 바로 산토리니의 낭만과 닮아 있다.
바다와 언덕이 만든 흰빛의 도시
통영의 동피랑 마을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그림 같다. 오르막을 따라 걷다 보면 벽마다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계단 끝에 닿을 때마다 바다가 시야에 들어온다. 마을의 흰 담벼락과 파란 지붕, 낮게 겹쳐진 집들은 에게해의 섬을 닮았다. 산토리니의 이아(Oia) 마을처럼, 통영의 언덕은 사람들의 삶을 품은 채 바다를 향해 열려 있다.
두 도시는 모두 화산과 바다, 언덕과 마을이 한 몸처럼 이어진 구조를 지녔다. 태양이 비추는 각도에 따라 빛의 농도가 달라지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도시의 색이 변한다. 통영의 오후 햇살이 산토리니의 노을빛과 겹치는 이유다.

바다의 맛과 사람의 향
통영은 바다를 삶의 중심에 두는 도시다. 중앙시장에는 갓 잡은 멍게와 굴, 생선이 넘쳐나고, 해안도로에서는 충무김밥을 손에 든 사람들이 바다를 바라본다. 그 모습은 산토리니 해변의 식당가를 떠올리게 한다. 오징어구이와 화이트와인, 그리고 창문 너머로 번지는 바다빛이 이국적인 정취를 만든다.
두 곳 모두 바다의 맛으로 여행자를 사로잡는다. 통영은 사람의 체온이 담긴 음식으로, 산토리니는 태양의 향이 담긴 식탁으로 기억된다. 같은 해산물이라도 조리법과 향신료, 풍경이 다르기에 전해지는 감정도 다르다.
언덕 위에서 마주한 시간
통영의 언덕길은 천천히 걷기에 좋다. 오르막을 오를수록 바다의 소리가 멀어지고, 바람이 가까워진다. 마을 끝 전망대에 서면 도시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해가 질 무렵이면 노을빛이 수면 위에 퍼진다. 산토리니의 석양 명소 이아에서 느꼈던 그 감정이 그대로 겹친다.
하얀 담장에 기대어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 그 고요한 순간 속에서 두 도시는 하나로 이어진다. 언덕 위의 여유는 국경을 넘어 같은 언어로 마음을 움직인다.
통영과 산토리니는 서로 다른 대륙의 바다를 품고 있지만, 같은 정서를 나눈다. 바다 위에 쌓인 집, 언덕을 타고 흐르는 햇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온기가 두 도시를 닮게 만든다.
통영의 하루는 산토리니의 저녁과 닮았다. 햇살이 천천히 바다로 스며드는 그 시간, 여행자는 남쪽 바다의 골목에서 지중해의 여유를 만난다. 그리고 그 순간, 통영은 단순한 한국의 항구 도시가 아니라, 감성과 풍경이 공존하는 또 하나의 산토리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