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편집국] 울릉도 북동쪽 바다에 조용히 떠 있는 작은 섬 하나. 관광 안내판에는 ‘죽도(竹島)’라 적혀 있지만, 현지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이곳을 ‘울릉도의 거울’이라 불러왔다. 육지에서 불과 4km 떨어져 있으면서도 날씨가 좋을 때만 갈 수 있고, 파도 한 번만 궂어지면 순식간에 길이 끊겨 버리는 섬. 그래서 죽도 여행은 항상, 그리고 누구에게나 ‘허락받아야 하는 여정’이 된다.
죽도는 원래 울창한 대나무 숲에서 비롯된 이름이지만 지금은 대나무보다 절벽과 파도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섬의 면적은 0.2㎢ 남짓. 행정구역상 경북 울릉군 북면에 속하며, 울릉도 본섬에서 배로 10분이면 닿는다. 하지만 그 10분이 늘 허락되지는 않는다. 울릉도 해역은 파도의 방향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고, 너울이 높을 땐 접안 자체가 불가능하다. 실제로 죽도 여객선은 연간 운항일수가 전체 날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기상청 자료를 보면 울릉도 연안의 파고가 1.5m 이상인 날이 연평균 130일을 넘는데, 이 대부분이 ‘죽도 결항일’로 이어진다.
섬의 첫인상은 의외로 단단하다. 부두에 내려서면 검은 현무암 절벽이 곧바로 눈을 압도한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하얀 포말이 깎아낸 암벽 지층이 드러나면서, 죽도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바다의 성벽’ 같은 느낌을 준다. 섬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는 총 길이 1.6km. 오래전 어민들이 만든 좁은 해안길을 2006년 울릉군이 정비하면서 지금의 모습이 갖춰졌다. 그러나 이 길은 여전히 자연의 시간 위에 놓여 있다. 비가 내리면 일부 구간이 미끄러지고, 겨울이면 절벽 사이로 매서운 칼바람이 스친다. 그럼에도 이 길을 찾는 사람들은 결국 섬을 한 바퀴 돌고 나서야 비로소 죽도의 진짜 표정을 본다.
섬의 중심부에는 울릉도에서 보기 힘든 평탄지가 있다. 예전에는 이곳에 오징어 말리기장이 있었고, 주민들이 잠시 머무르는 작은 막사도 있었다. 하지만 상주 인구는 없다. 1990년대 이후 죽도는 완전히 무인도가 됐고, 지금 남아 있는 것은 감시 초소 한 군데와 항로 관측용 시설 정도다. 육지와 가장 가까운 무인도면서 동시에 가장 접근이 까다로운 역설적 공간. 그래서 죽도는 오랫동안 ‘울릉도의 비밀 정원’처럼 취급돼 왔다.
죽도가 가진 또 하나의 얼굴은 ‘생물의 섬’이라는 점이다. 산림청과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죽도에는 한국 특산식물인 섬백리향, 울릉국화가 자생하고, 희귀조류인 흑비둘기와 바다새 번식지도 확인된 바 있다. 절벽 중턱에는 울릉도와 동일한 화산토 기반의 식생이 보존돼 있는데,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던 탓에 자연 회복력이 온전히 유지돼 왔다. 울릉군이 죽도 일대를 ‘생태경관 보전지역’으로 묶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죽도의 보전 문제는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관광객이 늘어난 탓이다. 코로나19 이후 울릉도 방문객이 연 50만 명을 넘어서면서 죽도 역시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으로 떠올랐다. 상황이 과열되자 2023년 울릉군은 일일 입도 인원을 최대 300명으로 제한했다. 이동 동선과 머무르는 시간이 제한적이다 보니 ‘생태 보존’과 ‘관광 활성화’ 사이에서 갈등도 반복된다. 군청 관계자는 “죽도는 자연의 섬이기 때문에 과도한 인프라 건설은 불가능하다”며 “현재 상태를 유지하며 생태조사와 안전 점검을 병행하는 방식 외에는 대안이 많지 않다”고 말한다.
죽도의 해안 절벽은 특히 취약하다. 매년 반복되는 너울성 파도와 겨울철 북서풍의 풍화 작용으로 일부 구간은 실금이 발견되기도 했다. 실제로 2018년과 2021년에는 해안 산책로 일부가 파손돼 장기간 통행이 제한됐다. 울릉군은 응급 복구와 보강 공사를 실시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어렵다는 게 내부 판단이다. 섬 전체가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기둥 모양의 조면암·현무암 지질이라 균열이 생기면 연쇄적으로 붕괴 위험을 안게 된다.
그럼에도 죽도는 여전히 사람들을 부른다. 그 이유는 단순한 ‘관광명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죽도를 한 바퀴 돌고 나면, 바다는 더 크게 보이고 사람은 작아진다. 섬은 작지만 풍경은 크다. 길처럼 보이던 산책로는 결국 섬을 한 바퀴 돌기 위한 얇은 리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이곳이 주는 감동은 고립에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고립을 견디는 풍경’에서 온다.
끝에 다다르면 무명도와 관음도가 시야에 걸린다. 그 너머로 울릉도 본섬의 산능선이 흐릿하게 떠오른다. 가까이 있지만 건너가려면 다시 바다를 건너야만 한다. 파도가 허락해야만 갈 수 있고, 바람이 허락해야만 돌아올 수 있다. 죽도는 늘 그 자리에 있지만,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는 않다. 그래서 죽도는 금단의 여행지다. 길이 끊어질 때마다 섬의 고독은 더 짙어지고, 그 고독은 오히려 이 작은 섬을 더 강하게 만든다.
파도는 오늘도 죽도의 절벽을 두드린다. 섬은 무너질 듯 버티며, 그러나 무너지지 않은 채 한 세기 넘게 그 자리를 지켜왔다. 울릉도에 왔다면 죽도는 반드시 가야 한다. 하지만 ‘너무 쉽게 갈 수 없는 섬’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연이 허락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 그래서 죽도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오래도록 금단의 섬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