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겨울이 길고 식재료가 귀하던 노르웨이에서 생선을 오래 보관하기 위한 지혜는 독특한 형태로 남았다. 그 이름이 바로 ‘루테피스크(Lutefisk)’. 건어를 물에 불리고, 다시 잿물(lye)에 담갔다가 여러 차례 씻어내는 과정을 거쳐 젤리처럼 투명한 식감으로 되살린 이 음식은 외형만 보면 생선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낯설다. 그러나 이 루테피스크는 노르웨이의 오래된 생존 방식이자 북유럽 겨울 문화를 상징하는 음식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노르웨이 식탁 곳곳에서 등장하고, 지역마다 나름의 조리법과 곁들이는 방식이 다르다. 낯선 조리 과정을 견디고도 살아남은 이유는 분명하다. 첫입을 넘기면 입안에 퍼지는 은근한 단맛, 부드럽게 풀어지는 섬유질, 그리고 바다의 기억이 깊이 각인된 풍미 때문이다. 루테피스크는 노르웨이가 겨울을 건너온 방식 자체가 ‘한 접시의 이야기’가 되는 대표적 음식이다.
루테피스크의 역사는 북유럽의 혹독한 기후에서 출발한다. 냉장 기술이 없던 시절, 노르웨이 사람들은 바다에서 잡은 대구(cod)나 링피시(ling)를 건조해 두고 오랫동안 저장했다. 이 ‘스톡피스크(Stockfish)’는 지금도 노르웨이 로포텐 제도 일대에서 여전히 만들어지는 전통 방식으로, 북극 바람과 차가운 해풍만으로 자연 건조된다. 이렇게 바짝 마른 생선은 수분이 거의 없어 그대로는 먹기 어렵지만, 장기간 보관이 가능했다. 이 건조 대구를 다시 식탁 위로 되살리는 방식이 바로 루테피스크의 시작이다.
루테피스크의 핵심은 ‘복원 과정’이다. 먼저 건조된 생선을 며칠간 찬물에 담가 부드럽게 만든다. 이후 잿물(lye·수산화나트륨 용액)에 다시 담그는데, 이 과정에서 생선의 섬유질이 풀어지며 독특한 젤리 형태로 변화한다. 현대에는 안전성을 위해 농도를 낮춘 식용 알칼리 용액을 사용하지만, 전통적 방식과 원리는 동일하다. 잿물 처리 후 생선은 다시 며칠간 물에 담가 알칼리 성분을 완전히 씻어낸다. 이 복잡한 과정 덕분에 루테피스크는 특유의 ‘투명하게 빛나는’ 비늘과 젤리 같은 구조를 갖게 된다.
조리할 때는 굽거나 삶거나 찌는데, 생선살이 쉽게 부서지기 때문에 조리 온도와 시간을 정확히 맞추는 것이 관건이다. 노르웨이 가정에서는 보통 오븐에 버터와 후추, 소금만 살짝 더해 구워낸다. 젤리 같은 질감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바다 생선 특유의 단백한 맛이 은근하게 살아나고, 지방이 적어 깔끔하게 먹힌다. 루테피스크는 조리 방식에 따라 식감이 크게 달라지는데, 잘 구워졌을 때는 숟가락으로 떠도 형태가 유지될 만큼 탄력이 있다.
이 음식이 진정 빛나는 순간은 ‘곁들임’과 만날 때다. 노르웨이에서는 루테피스크를 완성하기 위해 세 가지를 거의 필수적으로 준비한다. 첫째, 완두콩 스튜(pea stew). 고소하고 달큰한 풋콩의 풍미가 알칼리 처리된 생선의 은근한 맛을 잡아준다. 둘째, 바삭하게 구운 베이컨 조각과 녹인 버터. 기름기 없는 루테피스크에 풍미를 더하고 식감의 균형을 잡는다. 셋째, 감자. 삶은 감자 또는 노르웨이 특유의 속이 단단한 품종을 곁들여 식사를 완성한다. 이 조합은 오랜 세월을 통과하며 정교하게 다듬어진 조리 방식으로, 루테피스크의 부드러움과 베이컨의 고소함, 완두콩의 단맛이 절묘하게 얽혀 겨울 한 끼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노르웨이에서 루테피스크가 가장 사랑받는 계절은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11월부터 연말까지 식당마다 루테피스크 세트 메뉴가 등장하고, 가족 모임이나 회사 연말 식사에서도 “올해는 루테피스크를 먹을까?”라는 말이 흔하게 오간다. 또한 루테피스크는 스웨덴과 덴마크에서도 사랑받지만, 노르웨이가 가장 넓은 스펙트럼의 조리법과 문화적 상징성을 갖는다. 그만큼 ‘겨울을 건너는 방식’ 자체가 음식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여행자가 루테피스크를 처음 접하면 이색적인 외형 때문에 주저하기 마련이다. 반투명한 살, 젤리 같은 구조, 잿물 처리라는 조리법까지. 하지만 한입 맛보면 생각보다 순하고 담백하며, 바다의 단맛이 은은하게 스며 있다. 노르웨이인들이 “루테피스크는 뇌보다 혀가 먼저 이해하는 음식”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외형은 낯설지만 맛은 의외로 친근하다.
루테피스크는 스칸디나비아 전역에서 종교적 금식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으며, 중세 시대에는 크리스마스 전 금식 기간 동안 주요 단백질 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오랜 전통 속에서 루테피스크는 ‘겨울을 버티는 지혜’에서 ‘겨울을 축하하는 음식’으로 변신했다. 현재는 북유럽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메뉴로도 등장하며, 미식 행사나 관광 프로그램의 일부로 꾸준히 소개된다.
루테피스크는 단지 특이한 조리법의 산물이 아니다. 북유럽 사람들이 자연과 맞서는 방식, 겨울을 준비하는 지혜, 한정된 자원을 오래 보관하는 생존 전략이 복잡한 공정 속에 녹아 있다. 젤리 같은 질감 때문에 낯설지만, 실은 가장 ‘북유럽스러운 맛’이기도 하다. 자연 건조된 대구의 깊은 풍미, 알칼리 처리 후 부드럽게 풀린 섬유질, 완두콩과 베이컨이 만들어내는 조화는 단순한 전통 그 이상이다. 여행자는 이 한 접시를 통해 북유럽의 기후, 문화, 생활양식까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루테피스크는 겨울의 긴 시간 속에서 꾸준히 사랑받아온 이유를 한입 만으로 증명하는 음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