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지중해의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섬 사르데냐. 푸른 바다와 돌담, 그리고 양들이 평원을 하얗게 물들이는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기이한 치즈가 있다. 바로 ‘카수 마르주(Casu Marzu)’. 직역하면 ‘썩은 치즈’. 그런데 이 치즈는 단순히 오래됐다는 수준이 아니다. 치즈 속에서 꿈틀대는 생명체, 바로 살아있는 구더기가 주인공이다. 유럽연합(EU)이 한때 판매를 금지할 정도의 위력. 여행자가 이 치즈를 마주하는 순간, 식탁은 호기심과 공포가 뒤섞인 작은 모험의 현장이 된다. 먹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혀가 아닌 용기로 맛보는 한입, 이 섬의 오랜 풍습과 절실한 생존의 역사가 그 안에 녹아 있다.
카수 마르주의 출발은 생존의 지혜였다. 옛 사르데냐 사람들은 냉장고도, 현대적인 식품 보존 기술도 없었다. 양젖 치즈 ‘페코리노’를 저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파리류가 알을 낳았고, 그 유충이 치즈 안을 파고들며 발효가 가속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치즈는 더 부드러워지고 향은 더 강렬해졌다. 문제는 그 향의 방향이 ‘고소함’을 지나 ‘암모니아 풍’으로 돌진한다는 것. 치즈를 자르면 눈앞에서 미세한 생명체들이 팔딱거리며 점프할 때도 있어, 먹다 눈에 뛰어들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소문까지 있다.
이 치즈를 제대로 먹기 위해서는 약간의 규칙과 의식이 필요하다. 먼저, 구더기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먹어야 제맛이라 여긴다. 죽어 있다면 이미 발효가 지나쳤고, 위생 상태가 나빠졌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지에서는 치즈 위를 덮지 않고 자연 그대로 둔다. 손님 앞에 내놓을 때도 속까지 보이도록 큼직하게 잘라 상 앞에 올린다. 한입 베어 물면 혀에 달라붙는 강렬한 자극, 고소함과 시큼함, 알싸한 풍미가 한꺼번에 밀려온다. 여기에 사르데냐 와인 ‘카논나우’를 곁들여야 진정한 궁합이 완성된다.
카수 마르주는 단지 음식이 아니다. 공동체적 경험이자 세대의 기억이다. 양을 키우며 돌판에 앉아 빵과 치즈를 나눠 먹던 풍경 속에서, 이 치즈는 가난과 끈질긴 자연 적응력의 상징이었다. 특히 결혼식이나 명절, 가족이 모두 모이는 자리에서 꺼내는 귀한 ‘대접 음식’으로 여겨졌다. 강한 맛 앞에서 주저 없이 한입을 넣을 수 있는 용기야말로 진정한 사르데냐 사람이라는 증명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EU 식품 규제가 강화되면서 판매 금지와 단속에 시달렸다. 위생 논쟁은 지금도 이어지지만, 사르데냐 주민들은 카수 마르주를 문화유산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물을 먹는 충격적인 비주얼 뒤에는 이 섬의 정체성과 자부심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카수 마르주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음식의 경계를 누가 정한다고 믿는가?” 어떤 이는 이 치즈를 보며 고개를 저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르데냐에서는 자연이 만들어낸 발효의 극치, 인간이 극단까지 탐구한 풍미의 예술이다. 여행이란 결국 익숙한 감각을 밀어내고 새로운 경험을 맞이하는 용기의 연속 아닐까.
살아 있는 치즈 앞에서 움찔하더라도, 그 한입 속에 담긴 섬사람들의 삶과 자부심을 떠올린다면 이미 당신은 여행자 이상의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 혀끝에서 시작된 모험은 종종 아주 오래 기억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