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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 맛 기획] 한입의 세계 ㉚ 미국 록키 마운틴 오이스터…황야의 유머와 생존이 빚은 ‘소의 마지막 부위’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록키 산맥의 서부 풍경은 언제나 거칠고 대담하다. 그런데 이 땅의 음식 문화도 그 기질을 그대로 닮은 한입을 품고 있다. 이름만 보면 신선한 해산물 요리처럼 들리는 ‘록키 마운틴 오이스터’. 그러나 막상 그 실체를 알게 되면 많은 여행자가 숟가락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고른다. 이 요리는 바다와는 전혀 상관없는 소의 고환이다. 서부 개척 시대의 생존 음식이자 카우보이 유머가 빚어낸 상징적인 요리. 이 이색 음식은 단순한 충격 요소가 아니라, 가난과 효율, 그리고 대륙의 초원을 누비던 이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오늘은 그 ‘충격적이지만 묘하게 설득력 있는’ 한입 속으로 들어가 본다.
 

 

록키 마운틴 오이스터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세기 후반으로 알려져 있다. 서부 개척민에게 가축은 생존의 모든 기반이었다. 소 한 마리는 고기, 젖, 가죽, 노동력까지 제공해 주는 종합 자원이었고, 따라서 버려지는 부위는 거의 없었다. 도축 과정에서 나온 내장은 물론 고환까지 모두 귀중한 단백질이자 열량 공급원으로 활용됐다. 당시의 카우보이들은 이 부위를 손질한 뒤 밀가루를 묻히고 기름에 튀겨 간단하면서도 강렬한 간식으로 삼았다. 이름을 ‘오이스터’라고 붙인 건 물론 해산물의 식감과 비슷해서가 아니라, 다소 단단한 일상의 농담이자 남성적 유머 코드에 가까웠다.

 

요리법은 의외로 정교하다. 먼저 고환의 얇은 막을 제거해야 부드러운 식감이 살아난다. 이 과정이 가장 중요한데 숙련되지 않으면 비린 향이 남거나 질겨지기 쉽다. 이후 슬라이스한 뒤 우유나 맥주에 잠시 담가 잡내를 빼고, 밀가루·파프리카·후추를 섞은 반죽을 입혀 튀겨낸다. 완성된 록키 마운틴 오이스터는 닭고기 너겟과 비슷한 색감에 바삭함이 특징이다. 정작 맛은 놀라울 정도로 순하고 담백하다는 평이 많다. 약간의 간을 더한 이것은 ‘생각보다 충격적이지 않은 음식’이라는 반전이 있다.

 

특히 미국 몬태나, 콜로라도, 와이오밍 지역에서는 지금도 축제나 로컬 식당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으며, ‘테스토페스트(Testy Fest)’ 같은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지역 커뮤니티는 이 음식을 단순한 호기심 상품이 아니라 ‘우리 삶의 흔적’으로 받아들인다. 가축과 함께 살아온 시절의 실용적인 철학, 그리고 척박한 땅에서 최대의 영양을 뽑아내던 개척 정신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관광객에게는 충격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메뉴지만, 현지인에게는 서부의 역사를 대변하는 한 조각인 셈이다.

 

물론 요리의 성격상 한국인의 입맛이나 감성에는 다소 높은 허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세계 음식사의 흐름에서 보면, 부위 전체를 쓰는 ‘노즈 투 테일(Nose-to-tail)’ 문화는 오히려 글로벌 트렌드로 확장되고 있다. 지속 가능성을 위해 식재료를 버리지 않는 철학은 현대 음식 담론에서도 중요한 가치다. 록키 마운틴 오이스터는 그 오래된 철학의 원형이자 서부 개척 시대의 생활 지혜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증거다.


록키 마운틴 오이스터는 많은 이에게 농담 같은 이름과 실제의 간극에서 오는 충격을 안긴다. 그러나 이 한입은 결코 엽기 요리나 기행으로만 볼 수 없다. 가축과 함께 살아가던 시대, 생존을 위해 버려지는 부위를 최소화해야 했던 개척민의 삶, 그리고 그 위에서 피어난 서부 특유의 유머와 여유가 담긴 음식이다. 낯설지만 의외로 담백한 맛은, 음식이라는 것이 결국 ‘상황과 문화가 빚어낸 합리’임을 다시 느끼게 한다. 세계는 넓고 식탁 위의 이야기는 더 넓다. 오늘도 한입의 세계는 우리의 편견을 조용히 시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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