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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 맛 기획] 한입의 세계 ㉛ 부탄 도쥐…치아의 한계를 시험하는 히말라야식 단단함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히말라야 산맥을 넘나드는 부탄의 시장에서는 ‘돌보다 단단한 음식’이라는 별명을 가진 간식이 있다. 바로 도쥐, 혹은 츄르피(Chhurpi). 처음 보면 고대 유적에서 굴러온 화강암 조각 같고, 손에 들면 묘하게 가벼우면서도 견고하다. 여행자들은 우스갯소리로 “치과 보험이 있는 사람만 씹을 수 있는 간식”이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이 돌 같은 치즈는 히말라야의 자연과 고산민의 생활을 품은 귀중한 저장식이자 이동식 식량이다. 부탄의 목축 문화, 불교식 절제, 그리고 척박한 고산 환경이 만들어낸 독특한 생존 맛. 이 작은 돌덩이가 어떻게 한 나라의 전통 간식으로 자리 잡았는지, 그 탄생 배경 속으로 들어가 본다.
 

 

부탄은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히말라야의 깊은 골짜기와 봉우리가 나라 전체를 감싸고 있어 외부와의 왕래가 적었고, 자연히 오래 버틸 수 있는 저장식이 필수였다. 도쥐는 이 환경에서 태어난 산물이다. 야크나 소의 우유를 발효·응고시키고, 천에 싸서 수분을 쥐어짜낸 뒤, 마지막으로 강풍에 건조하거나 햇볕 아래 수주에서 수개월 동안 말려 단단함의 끝을 끌어올린다. 그 과정이 ‘돌 같다’는 별명을 만든 것이다.

 

도쥐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비교적 부드럽고 짭짤한 ‘부드러운 츄르피(Soft Chhurpi)’, 다른 하나는 치아를 내주어야 할 만큼 단단한 ‘하드 츄르피(Hard Chhurpi)’다. 부탄과 네팔, 시킴 등 히말라야 여러 지역에 퍼져 있지만, 그중에서도 부탄의 도쥐는 가장 오래 말려 단단한 편이다. 지역마다 강풍과 일조량이 다르기 때문에 산지에 따라 단단함의 차이도 난다.

 

여행자가 도쥐를 처음 접하면 보통 작은 충격을 받는다. 포장 상태는 마치 오래된 나무토막이나 돌멩이 같고, 손톱으로 긁어도 스크래치 하나 남지 않는다. 사실 도쥐는 ‘씹어서 먹는 음식’이 아니라 ‘입안에서 녹여 먹는 음식’이 맞다. 입안에 넣고 한참을 굴리면, 처음엔 돌멩이를 빠는 느낌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치즈 고유의 고소하고 담백한 향이 은은하게 스며 나온다. 부탄 사람들은 집을 나설 때 주머니에 도쥐 몇 개를 넣고, 이동 중이거나 농사일을 하면서 천천히 녹여 먹는다.

 

또한 도쥐는 히말라야 개와 야크의 간식으로도 쓰인다. 단백질과 칼슘 함량이 높고,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기 때문에 고산 지역 목동들에게는 매우 실용적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집안의 태양광 패널이나 처마 밑에 줄을 걸어 도쥐를 말리는데, 관광객들에게는 이 모습이 자연 그대로의 히말라야풍 풍경으로 보인다. 사는 이들에게는 일상이지만, 외지인의 눈에는 신비롭고 이국적인 풍경이다.

 

부탄 사람들은 도쥐를 단순 건조식이 아니라 정신적 의미가 있는 음식으로도 본다. 고된 고산 생활 속에서 오래 견디고 버텨내는 특성과 연결돼 ‘인내의 간식’이라 불리기도 한다. 불교적 금욕, 자연과의 공존, 절제된 삶을 상징하는 식품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 치즈 한 조각에 담긴 오랜 역사와 삶의 태도는 도쥐를 단순히 ‘이색 간식’으로만 소비하기 어렵게 만든다.


도쥐는 여행자에게는 돌 같은 치즈로 기억되지만, 부탄 사람들에게는 삶의 무게를 버티게 하는 작은 동반자다. 한 조각이 수개월의 건조와 기다림을 요구하듯, 그것을 먹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급하게 베어 먹을 수 없고, 천천히 녹일 때만 맛이 드러난다. 먹는 행위 자체가 ‘천천히 살아가기’를 강요하는 셈이다. 부탄의 풍경과 문화가 그러하듯, 도쥐는 서두르지 않는 삶을 대변하는 상징 같은 음식이다. 세계의 이색 음식이 때로 충격과 낯섦으로 기억되지만, 그 깊은 곳에는 늘 그 음식을 만든 사람들의 삶이 자리한다. 도쥐를 입안에서 천천히 굴리는 동안, 우리는 부탄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함께 굴리고 있는 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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