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편집국] 서울에서 ‘시간이 겹쳐 보이는 공간’을 찾는다면, 답은 분명히 하나로 모인다. 종로 한복판, 고층 빌딩과 대로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좁은 골목 안, 전혀 다른 리듬으로 숨 쉬는 곳, 익선동이다. 이곳은 단순한 한옥 마을이 아니다. 근대의 주거지, 쇠퇴한 도시의 잔존 공간, 그리고 지금 가장 뜨거운 상업 문화가 겹쳐진, 서울이라는 도시의 변화를 압축해 보여주는 현장이다.
익선동의 시작은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통 한옥이 대규모로 밀집된 이 지역은 원래 중산층을 위한 도시형 주거지로 계획됐다. 궁궐 주변에 형성된 기존 한옥과 달리, 보다 실용적인 구조와 높은 밀도를 가진 ‘도시형 한옥’이 특징이다. 이 점에서 익선동은 전통과 근대가 이미 한 번 섞여 탄생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곳은 점차 낙후된 주거지로 남았다. 개발에서 비켜난 채 오래된 건물과 좁은 골목만이 남았고, 한동안 도시의 주변부처럼 취급되기도 했다. 지금의 익선동을 이해하려면, 이 ‘비켜남의 시간’을 반드시 짚어야 한다. 이 공간이 살아남은 이유는 발전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변화는 201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다. 젊은 창업자들과 창작자들이 이곳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익선동은 전혀 다른 흐름을 맞는다. 낡은 한옥을 철거하지 않고, 구조를 유지한 채 카페와 식당, 소규모 상점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이 빠르게 확산됐다. 그 결과, 전통 건축과 현대적 감각이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익선동의 핵심은 ‘골목 구조’에 있다. 자동차 중심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좁고 복잡한 골목은 자연스럽게 보행 중심의 환경을 만든다. 직선이 아닌 굽은 길, 시야를 한 번에 열어주지 않는 구조는 사람의 속도를 늦추고, 공간을 탐색하게 만든다. 이곳에서는 목적지보다 이동 자체가 경험이 된다.
이러한 구조는 상업 공간의 성격도 바꿨다. 대형 프랜차이즈가 들어서기 어려운 대신, 개별성이 강한 소규모 매장들이 골목마다 자리 잡는다. 각각의 공간은 자신만의 콘셉트를 갖고, 방문객은 이를 하나씩 발견해 나간다. 익선동이 ‘핫플레이스’로 불리면서도 여전히 개별성을 유지하는 이유다.
위치 또한 상징적이다. 익선동은 종로 중심부에 있으며, 바로 인근에는 창덕궁과 종묘가 자리한다. 왕실의 공간과 시민의 삶이 맞닿는 지점에서, 이 골목은 역사와 현재를 연결하는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야간의 익선동은 또 다른 층위를 드러낸다. 낮의 소란이 가라앉고, 한옥 처마 아래로 따뜻한 조명이 켜지면 골목은 훨씬 밀도 있는 공간으로 변한다. 좁은 길과 낮은 건물이 만들어내는 폐쇄감은 오히려 아늑함으로 작용하고, 방문객은 자연스럽게 공간 안에 머물게 된다.
익선동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예쁜 골목’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곳은 서울이 과거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완전히 보존하지도, 완전히 철거하지도 않는 방식. 그 사이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전략이 이 공간에 적용됐다.
그래서 익선동은 관광지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질문이다. 오래된 도시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답은 이 골목 안에 이미 제시되어 있다.
가장 낡은 공간이,
가장 앞선 방식으로 다시 쓰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