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편집국] 바다는 자연재해로 사라지지 않았다. 강의 방향을 바꾼 결정 하나가, 수천만 명의 생태계를 끊어냈다. 한때 지도 한가운데서 항구와 어업, 기후를 동시에 지탱하던 내해. 아랄해는 증발하지 않았다. 강이 밭으로 흘러가자 바다는 후퇴했고, 수면은 낮아졌으며 염도는 치솟았다. 배는 육지에 멈춰 섰고, 항구는 사막 한복판에 고립됐다.
아랄해는 ‘사라진 바다’로 불린다. 그러나 이곳은 자연의 실패가 아니라 인간 개입의 결과다. 물길을 관리한다는 명분 아래 진행된 선택들이 하나의 바다를 기능 정지 상태로 만들었다. 그래서 아랄해는 금단의 여행지다. 위험해서가 아니라, 보고 나면 같은 선택을 반복할 수 없게 만드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내해였던 시간
아랄해는 중앙아시아의 심장이자, 한때 사람들에게 바다로 불렸던 내륙 염수호였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사이에서 수많은 어촌과 항구를 연결하며, 지역 경제와 문화의 중심 역할을 했다. 그중 무이나크는 가장 상징적인 항구 도시였다. 수천 척의 어선이 정박했고, 바다에서 잡은 생선은 내륙 깊숙이까지 운송됐다. 하지만 강물이 제대로 흘러들지 못하면서 수위가 급격히 낮아졌고, 해안선은 내륙으로 후퇴했다. 오늘날 무이나크는 아랄해 한가운데 남겨진 폐허 도시로, 한때의 풍요와 자연 재앙을 동시에 보여주는 공간이다.
강이 바뀌자 바다가 무너졌다
소련은 중앙아시아를 거대한 면화 생산지로 재편했다. 사막을 경작지로 바꾸기 위해 대규모 관개수로가 건설됐고, 강물은 바다 대신 밭으로 흘러갔다. 단기간의 생산량 증대는 성공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비용은 지도로 환산되지 않았다. 아랄해로 유입되던 물의 양은 절반 이하로 줄었고, 증발량을 감당하지 못한 바다는 빠르게 후퇴했다. 수위는 해마다 내려갔고, 염도는 상승했다. 담수성 어종은 사라졌고, 어업은 붕괴했다. 바다는 쪼개졌고, 결국 남아랄은 지도에서 실질적으로 삭제됐다. 바다는 마르지 않았다. 유지 조건이 사라졌을 뿐이다.
항구였던 도시의 잔상
아랄스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바다가 아니다. 모래다. 한때 파도가 닿던 자리는 이제 사막의 일부가 됐다. 선착장은 육지 한가운데 멈춰 있고, 녹슨 어선들은 바람에 노출된 채 기울어 있다. 이 배들은 난파되지 않았다. 항해를 멈춘 적도 없다. 바다가 떠났다. 그 사실이 이 풍경을 더 불편하게 만든다. 어업 종사자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관련 산업은 연쇄적으로 무너졌다. 인구는 급감했고, 도시는 축소됐다. 학교와 병원, 상점은 남아 있지만, 기능은 희미하다. 항구는 더 이상 경계가 아니다. 끝점이다.
바다의 바닥이 만든 새로운 재앙
물이 빠진 자리에는 모래보다 먼저 염분이 남았다. 여기에 농약과 산업 잔류물이 섞였다. 바람이 불면 바다는 다시 움직인다. 물이 아니라 먼지로. 이 염분 폭풍은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한다. 농작물을 망치고, 토양을 죽이며, 사람들의 폐 속으로 들어간다. 아랄해 인근 지역에서는 호흡기 질환, 신장 질환, 암 발생률이 유의미하게 높아졌다. 기후도 변했다. 수역이 사라지자 여름은 더 뜨거워지고, 겨울은 더 건조해졌다. 바다는 단순한 물 저장소가 아니라 기후의 완충 장치였다는 사실이, 사라진 뒤에야 증명됐다.
복원의 시도와 한계
2000년대 이후 북아랄해 일부에서는 복원 시도가 이루어졌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댐을 건설해 수위를 회복시키고, 제한적이나마 어업을 되살렸다. 일부 어종이 돌아왔고, 수면은 다시 형체를 갖췄다. 그러나 이는 부분적인 회복이다. 남아랄은 여전히 사막이다. 한번 붕괴된 수계는 정치적 결단만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이곳에 남아 있다. 복원은 가능하지만, 원상 회복은 아니다.
금단의 여행지가 된 이유
아랄해는 출입이 금지된 곳이 아니다. 위험해서 막힌 장소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곳은 금단의 여행지로 남는다. 이 풍경은 소비하기 어렵다. 사진은 상징이 되고, 상징은 질문이 된다. 사막 위의 배는 아름답지 않다. 설명이 필요 없다. 인간이 자연을 ‘관리 대상’으로만 보았을 때 어떤 결과가 오는지를 이미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걷는 일은 여행이 아니라, 선택의 흔적을 읽는 일에 가깝다.
아랄해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돌아오지도 않는다. 한 번 끊긴 흐름은 같은 방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사막 위에 멈춘 배들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인간의 선택이 남긴 현재형의 풍경이다. 이곳에서 남는 것은 경관이 아니라 질문이다. 물을 관리한다는 말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그리고 그 결정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아랄해는 자연이 무너진 장소가 아니다. 인간이 자연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은 자리다. 그래서 이 바다는 위험해서가 아니라, 기억해야 할 이유 때문에 금단의 여행지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