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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 월드 스케치|시즌 1] 한 나라, 한 장면⑤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

국가 이전에 문명이 먼저 서 있던 공간
시간이 권력보다 오래 남은 무대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카이로 도심에서 차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사막 위에 기자 피라미드는 놓여 있다. 이집트를 처음 찾는 여행자 대부분은 이 장면을 국가의 얼굴처럼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피라미드들은 국가가 만들어낸 유산이 아니다. 국가는 훨씬 뒤에 등장했고, 문명은 이미 이곳에 서 있었다.

 

기자 피라미드는 이집트를 설명하는 출발점이지만, 동시에 국가라는 개념을 넘어서는 존재다. 왕조가 흥망을 거듭해도, 종교와 체제가 바뀌어도 이 구조물은 남았다. 이집트는 이 피라미드를 통해 과거를 소유하기보다, 과거 위에 서 있는 국가가 됐다. 그래서 이 공간은 지금도 현재형이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기자 피라미드는 이집트 국가의 시작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국가 이전의 질서를 드러낸다. 파라오는 신이었고, 통치는 인간의 시간이 아닌 영원의 시간에 맞춰 설계됐다. 권력은 생존이 아니라 지속을 목표로 했다.

 

이 공간은 정치 권력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었는지를 증명한다. 수십만 명의 노동과 자원이 한 목적을 위해 조직됐다. 국가는 아직 없었지만, 통치 시스템은 완성돼 있었다. 피라미드는 권력이 문명으로 작동한 결과다.

 

오늘날 이집트는 이 유산을 국가 상징으로 사용한다. 국기나 헌법보다 오래된 상징이다. 국가는 이 피라미드를 통해 자신보다 큰 시간을 끌어안는다. 대표성은 제도에서가 아니라 시간에서 나온다.

 

그래서 기자 피라미드는 이집트를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장면이 된다. 한 국가의 성격이 아니라, 그 국가가 어떤 문명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집트는 그 점에서 특이한 출발선을 가진 나라다.

 

이 장소가 만들어진 배경과 과정

 

기자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 고왕국 시대에 건설됐다. 파라오의 무덤으로 설계된 이 구조물은 사후 세계를 전제로 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통치의 연장이었다. 공간은 종교와 정치가 완전히 결합된 결과였다.

 

입지는 우연이 아니었다. 나일강 서쪽, 해가 지는 방향에 배치됐다. 삶과 죽음의 질서가 공간에 반영됐다. 자연과 신앙은 설계의 일부였다.

 

건설 과정은 장기적 국가 프로젝트에 가까웠다. 수십 년에 걸쳐 계획되고 수행됐다. 노동력은 강제가 아니라 의무와 신앙의 결합이었다. 문명은 사람을 동원하는 방식을 알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피라미드는 단순한 무덤을 넘어섰다. 국가 이전의 조직력과 기술, 신념이 응축됐다. 그래서 이 공간은 기원으로 기능한다.  이집트 문명의 기준점이 됐다.

 

이 장소가 겪은 변화와 그 결과

 

시간이 흐르며 파라오의 시대는 끝났다. 외세의 지배와 왕조 교체가 반복됐다. 그러나 피라미드는 해체되지 않았다. 너무 오래됐고, 너무 거대했기 때문이다.

 

이집트는 여러 제국의 일부가 됐지만, 피라미드는 그 누구의 것도 되지 않았다. 정복자는 이 유산을 소유하지 못했다. 대신 배경으로 남겼다. 공간은 권력보다 강했다.

 

근대 이후 피라미드는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고고학과 관광의 대상이 됐다. 문명은 연구되고 소비되기 시작했다. 이집트 국가는 이 유산을 통해 세계와 연결됐다.

 

그 결과 피라미드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의 자산이 됐다. 국가 경제와 이미지에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문명은 현대 국가의 기반이 됐다. 이집트는 과거를 활용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오늘, 이 장소가 갖는 의미

 

오늘날 기자 피라미드는 이집트 관광의 중심이다. 수많은 방문객이 이 장면을 보기 위해 모인다. 사진 속 풍경은 전 세계에 공유된다. 이집트의 첫 이미지는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 공간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국가 정체성의 근간으로 작동한다. 정치가 흔들려도, 체제가 바뀌어도 피라미드는 남는다. 안정성은 과거에서 나온다.

 

이집트 사회는 이 유산을 자부심으로 받아들인다. 동시에 관리와 보존의 부담도 안고 있다. 문명을 지키는 일은 현재의 과제가 됐다. 과거는 책임이 된다.

 

그래서 기자 피라미드는 시간의 경계에 서 있다. 과거와 현재, 문명과 국가가 겹친다. 이집트는 이 겹침 위에서 오늘을 살아간다.

 

이 공간이 남긴 국가의 얼굴

 

기자 피라미드는 이집트 국가의 얼굴이다. 그러나 그 얼굴은 국가가 만들지 않았다. 문명이 먼저 있었고, 국가는 그 위에 세워졌다. 이 순서가 이집트를 규정한다.

 

이 장소를 이해하면 이집트가 보인다. 변화보다 지속을, 제도보다 시간을 중시해온 사회다. 국가는 문명의 관리자 역할을 맡았다. 권력은 영원을 흉내 냈다.

 

그래서 이집트는 현재형 국가이면서 동시에 과거형 문명이다. 두 시간이 한 공간에 공존한다. 기자 피라미드는 그 공존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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