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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 월드 스케치|시즌 1] 한 나라, 한 장면⑳ 남아프리카공화국 컨스티튜션 힐

갈등의 기억 위에 세운 국가
처벌의 공간을 헌법으로 바꾼 선택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요하네스버그 도심의 언덕 위에는 교도소였던 공간이 남아 있다. 컨스티튜션 힐은 과거 억압의 장치였던 장소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이곳을 허물지 않았다. 대신 국가의 중심 제도를 이 자리에 올려놓았다.

 

이 공간에는 폭력과 차별, 저항의 시간이 동시에 쌓여 있다. 인종차별 체제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벽을 기억한다. 국가는 이 장소를 피하지 않았다. 갈등의 결과를 국가 구조로 전환했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컨스티튜션 힐은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핵심 시설이었다. 정치범과 일반 시민이 함께 수감됐다. 법은 차별을 정당화하는 도구였다. 이 공간은 국가 폭력이 작동하던 현장이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민주화 이후 선택을 했다. 과거의 상징을 제거하지 않았다. 대신 헌법재판소를 같은 자리에 세웠다. 권력의 성격을 공간으로 전복했다.

 

이 전환은 선언에 가까웠다. 법이 억압에서 보호로 바뀌었다는 메시지였다. 국가는 기억을 덮지 않았다. 기억 위에 제도를 쌓았다.

 

그래서 이 장소는 대표성이 강하다. 승리의 기념물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다. 국가 정체성은 갈등의 처리 방식에서 드러난다. 컨스티튜션 힐은 그 방식의 상징이다.

 

이 장소가 만들어진 배경과 과정

 

컨스티튜션 힐의 교도소는 식민지 시기부터 운영됐다. 이후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서 기능이 강화됐다. 법적 차별은 공간 운영으로 구현됐다. 수감은 통치의 수단이었다.

 

넬슨 만델라를 비롯한 반체제 인사들이 이곳을 거쳤다. 저항은 공간 안에서 축적됐다. 억압의 장소는 기억의 장소가 됐다. 물리적 구조는 그대로 남았다.

 

민주화 이후 국가적 논의가 시작됐다. 이 공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쟁점이었다. 철거와 보존이 충돌했다. 국가는 전환을 선택했다.

 

헌법재판소 건설은 상징적 결정이었다. 기존 교도소 자재 일부가 재사용됐다. 과거를 지운 흔적은 없다. 변화는 덧붙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 장소가 겪은 변화와 그 결과

 

교도소 기능이 중단되며 공간은 비워졌다. 그러나 공백 상태로 두지 않았다. 박물관과 사법기관이 함께 들어섰다. 기억과 제도가 결합됐다.

 

이 변화는 국내외에 강한 메시지를 줬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보복을 선택하지 않았다. 진실과 제도를 우선했다. 국가는 감정이 아닌 구조로 대응했다.

 

컨스티튜션 힐은 교육 공간이 됐다. 시민은 이곳에서 과거를 배운다. 법의 의미를 현재형으로 이해한다. 국가 운영의 기준점이 바뀌었다.

 

그 결과 이 공간은 단일 기능을 갖지 않는다. 추모와 판단이 동시에 이뤄진다. 과거와 현재가 분리되지 않는다. 변화는 복합적 결과를 낳았다.

 

 

오늘, 이 장소가 갖는 의미

 

오늘의 컨스티튜션 힐은 국가의 심장부다. 헌법재판소는 실제로 국가 판단을 내린다. 과거는 상징에 머물지 않는다. 현재의 결정과 연결된다.

 

시민에게 이 공간은 경고이자 약속이다. 권력은 언제든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기억이다. 동시에 법이 이를 통제할 수 있다는 신호다. 국가는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

 

이곳은 관광지로 소비되지 않는다. 방문은 이해를 전제로 한다. 설명 없는 감상이 허용되지 않는다. 공간은 질문을 요구한다.

 

그래서 이 장소는 현재진행형이다. 민주주의는 완성형이 아니다. 국가는 계속 이 공간을 참조한다. 컨스티튜션 힐은 살아 있다.

 

이 공간이 남긴 국가의 얼굴

 

컨스티튜션 힐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선택을 보여준다. 갈등을 지우지 않았다. 처벌의 공간을 규범의 공간으로 바꿨다. 국가는 기억을 관리한다.

 

이 장소를 이해하면 국가의 성격이 보인다. 화해는 망각이 아니라 구조였다. 민주주의는 선언이 아니라 설계였다. 이 언덕 위에 그 얼굴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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