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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 월드 스케치|시즌 2] 한 나라, 한 장면⑪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모나스

독립을 세운 광장
국가를 세운 기념탑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자카르타 중심 메르데카 광장에는 도시의 소음이 잠시 멈춘 듯한 빈 공간이 펼쳐진다. 고층 빌딩과 차량 행렬로 가득한 수도 한복판에서 이 정도 규모의 공터는 이례적이다. 그 한가운데 흰색 기둥 하나가 수직으로 치솟아 하늘을 가른다. 인도네시아 현대국가의 출발은 이 장면에서 시작된다.

 

모나스(Monas)는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다. 네덜란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뒤 스스로 세운 독립의 표식이다. 국가는 건물보다 먼저 상징을 세웠고, 권력보다 먼저 기억을 고정했다. 이 탑은 인도네시아가 어떤 나라가 되고자 했는지를 압축해 보여준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모나스는 ‘국립기념탑(Monumen Nasional)’의 약자다. 높이 132미터 규모로 자카르타 어디서나 시야에 들어온다. 꼭대기에는 금박을 입힌 불꽃 조형물이 얹혀 있다. 꺼지지 않는 독립의 열망을 형상화한 상징이다.

 

탑이 들어선 메르데카 광장은 ‘자유’를 뜻하는 이름을 갖고 있다. 광장은 비워 둔 공간 자체로 의미를 만든다. 군사 퍼레이드와 국가 행사, 대규모 집회가 모두 이곳에서 열린다. 국가는 이 빈 공간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낸다.

 

이곳은 지리적으로도 수도의 중심이다. 대통령궁과 정부 청사, 주요 기관이 주변을 둘러싼다. 권력과 시민이 같은 장면을 공유한다. 공간은 자연스럽게 정치의 무대가 됐다.

 

그래서 모나스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국가 의식이 반복되는 장소다. 시민은 이곳에서 국가를 체감한다. 인도네시아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제시되는 풍경이 됐다.

 

이 장소가 만들어진 배경과 과정

 

인도네시아는 1945년 독립을 선언했지만 곧바로 안정된 국가가 되지 못했다. 네덜란드와의 재충돌과 내부 혼란이 이어졌다. 국가는 통합의 상징을 필요로 했다. 눈에 보이는 중심이 요구됐다.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는 기념탑 건설을 직접 구상했다. 독립의 역사를 건축으로 남기겠다는 의도였다. 그는 수도 한복판에 거대한 광장을 비워 두는 결단을 내렸다. 공간 자체가 정치적 메시지였다.

 

1960년대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됐다. 경제 상황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사업은 멈추지 않았다. 국가는 상징을 우선순위에 뒀다. 기념탑은 체제의 의지를 드러내는 프로젝트였다.

 

1975년 모나스가 완공되면서 자카르타의 중심축이 재편됐다. 도시는 이 탑을 기준으로 확장됐다. 독립 서사는 물리적 형태를 얻었다. 국가는 비로소 하나의 장면을 갖게 됐다.

 

이 장소가 겪은 변화와 그 결과

 

모나스는 권력의 무대이기도 했다. 권위주의 시기에는 국가 행사가 집중됐다. 군사적 질서와 체제 선전이 이 광장을 채웠다. 상징은 통제의 도구로도 활용됐다.

 

그러나 시민의 목소리 역시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시위와 집회, 정치적 요구가 같은 자리에서 터져 나왔다. 광장은 언제나 긴장의 공간이었다. 권력과 대중이 동시에 서는 무대였다.

 

1998년 민주화 운동 당시에도 군중은 이곳으로 모였다. 체제 변화의 에너지가 광장을 가득 메웠다. 기념탑은 또 다른 시대의 시작을 지켜봤다. 공간은 역사의 증인이 됐다.

 

그 결과 모나스는 단일한 의미로 규정되지 않는다. 통합의 상징이자 저항의 장소다. 국가와 시민이 부딪힌 흔적이 켜켜이 쌓였다. 인도네시아 현대사가 그대로 각인됐다.

 

 

오늘, 이 장소가 갖는 의미

 

오늘의 모나스는 시민들의 일상 공간으로도 기능한다. 가족 단위 방문객과 학생, 관광객이 잔디를 채운다. 조깅과 산책이 이어진다. 거대한 기념물은 생활 속 풍경이 됐다.

 

탑 내부 전시관에는 독립 투쟁과 국가 형성 과정이 정리돼 있다. 역사는 교과서가 아니라 공간으로 체험된다. 방문객은 계단을 오르며 과거를 따라간다. 기억은 체험을 통해 강화된다.

 

국가 행사도 여전히 이곳에서 열린다. 기념일마다 국기가 오르고 연설이 이어진다. 광장은 다시 공적 무대로 전환된다. 일상과 정치가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그래서 모나스는 현재진행형이다. 완성된 유산이 아니다. 계속 사용되며 의미가 덧붙는다. 인도네시아는 이 공간을 통해 지금도 자신을 정의한다.

 

이 공간이 남긴 국가의 얼굴

 

모나스가 보여주는 인도네시아의 얼굴은 ‘독립 이후의 국가’다. 식민의 기억을 지우지 않고 중심에 세웠다. 상처를 숨기지 않고 상징으로 만들었다. 기억을 통해 정체성을 구축했다.

 

이 나라의 출발점은 경제도 군사도 아니었다. 먼저 독립이라는 이야기를 세웠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광장과 탑으로 고정했다. 국가는 그렇게 눈에 보이는 형태를 얻었다.

 

자카르타의 빌딩은 계속 바뀌지만 모나스는 자리를 지킨다. 시대가 바뀌어도 중심은 이동하지 않는다. 시민은 이 탑을 기준으로 수도를 인식한다. 상징은 도시 구조를 이끈다.

 

이 공간을 이해하면 인도네시아가 보인다. 단일 민족이 아닌 다수의 섬과 문화가 묶인 나라다. 그래서 더 강한 통합의 상징이 필요했다. 모나스는 그 필요가 만든 국가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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