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정국환 기자] 말레이시아를 처음 마주하는 순간, 여행자는 이상한 감각에 사로잡힌다. 유리와 철골로 만든 초고층 빌딩 바로 옆에 붉은 벽돌의 식민지 시대 건물이 서 있고, 그 뒤편에는 이슬람 돔과 미나렛이 조용히 하늘을 가른다. 이질적인 풍경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말레이시아라는 나라가 어떤 방식으로 시간을 축적해 왔는지를 말없이 증명한다.
이 나라의 건축 랜드마크들은 ‘유명한 관광지’이기 이전에 하나의 문장이다. 왕조의 기억, 식민의 흔적, 독립 이후의 야심, 그리고 다문화 사회의 공존이 각각의 건축물에 층층이 새겨져 있다. 말레이시아를 여행한다는 것은 곧 이 건축의 문장들을 따라 걷는 일과 다르지 않다.
쿠알라룸푸르의 하늘을 지배하는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는 말레이시아가 세계를 향해 내민 선언문에 가깝다. 쌍둥이처럼 솟은 두 개의 타워는 기술력과 자본의 상징이면서도, 이슬람 기하학에서 영감을 받은 구조로 국가 정체성을 놓치지 않는다. 한때 세계 최고층이라는 기록보다 중요한 것은, 이 건물이 말레이시아가 ‘어떤 나라가 되고 싶은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준다는 점이다. 도시의 밤하늘을 밝히는 실루엣은 자신감과 야심의 형태다.
그러나 시선을 조금만 낮추면, 전혀 다른 시간이 펼쳐진다. 메르데카 광장을 마주한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은 붉은 벽돌과 아치, 시계탑으로 식민지 시대의 공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영국 행정청사로 출발한 이 건물은 오늘날 국가 행사와 시민의 일상을 품는 공간이 됐다. 과거의 권력이 현재의 공공성으로 전환된 상징적인 장소다. 말레이시아는 이 건물을 철거하지 않았다. 대신 기억을 남기는 쪽을 택했다.
종교 건축은 말레이시아 건축의 또 다른 축이다. 푸트라자야의 핑크 모스크는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구조로, 신앙과 권위, 미학을 동시에 드러낸다. 분홍빛 돔과 정교한 내부 장식은 장엄하면서도 부드럽다. 이곳에서 모스크는 단지 기도의 공간이 아니라 국가가 품은 이슬람 문화의 얼굴이 된다. 쿠알라룸푸르의 모스크 윌라야와 자멕 모스크 역시 오스만, 무어, 말레이 전통 양식이 겹쳐지며 말레이시아식 이슬람 건축이 단일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
도시를 벗어나 말라카와 페낭에 이르면, 건축은 다시 한 번 언어를 바꾼다. 말라카의 네덜란드 광장은 붉은색 외벽으로 유럽 식민사의 흔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세인트폴 교회 유적은 바람과 시간 속에서 폐허가 된 채 역사를 증언한다. 페낭 조지타운의 청 팟츠 맨션은 중국 상인의 부와 동남아 현지 양식, 유럽 장식미가 뒤섞인 공간이다. 이곳의 건축은 어느 한 문화에 속하지 않는다. 대신, 교역과 이주의 기억을 그대로 품고 있다.
쿠알라룸푸르 타워는 말레이시아식 ‘균형 감각’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사례다. 숲 보호구역 위에 세워진 이 타워는 도시의 상징이면서도 자연을 침범하지 않으려는 타협의 결과다. 전망대에 오르면 초고층 빌딩과 열대 숲이 동시에 시야에 들어온다. 말레이시아 건축이 언제나 성장과 보존 사이에서 고민해 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다.
말레이시아의 유명한 건축물들은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를 설명한다. 하나의 건물만 떼어 보면 인상적인 관광지에 불과하지만, 이들을 연결해 보면 하나의 국가 서사가 드러난다. 왕조에서 식민지로, 독립에서 글로벌 국가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이 건축이라는 물질 위에 차분히 쌓여 있다.
그래서 말레이시아의 랜드마크는 사진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앞에 서면, 이 나라가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무엇을 지우지 않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새로 쌓았는지가 보인다. 말레이시아 여행의 진짜 풍경은 바로 그 건축의 겹침 속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