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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 특집] 2025-2026 한국관광 100선 ③ 서울 5대 궁궐 – 창덕궁

권력은 자연 속에 스며들었다

[뉴스트래블=편집국 기자] 서울 종로구 율곡로. 붉은 돈화문을 지나면 궁궐은 곧장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직선 대신 완만한 굴곡, 과시 대신 절제. 창덕궁은 처음부터 다른 방식으로 권력을 말해온 궁궐이다.

 

1405년 태종에 의해 건립된 창덕궁은 경복궁의 이궁(離宮)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조선 왕조 역사에서 가장 오랜 기간 실질적 법궁 역할을 수행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폐허로 남았던 동안 왕들은 창덕궁에서 정사를 돌보았다. 왕조의 중심은 직선의 궁이 아니라, 자연을 끌어안은 이 궁으로 이동했다.

 

 

창덕궁의 가장 큰 특징은 지형을 거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악산에서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을 따라 전각이 배치됐고, 건물은 축선에 맞춰 억지로 정렬되지 않았다. 자연의 흐름에 순응한 배치. 이것이 창덕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유이기도 하다. 인위적 질서보다 자연과의 조화를 우선한 궁궐, 그것이 창덕궁의 본질이다.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면 인정전 영역이 펼쳐진다.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즉위식과 국가 의례가 열리던 공간이다. 규모는 경복궁 근정전에 비해 다소 절제되어 있지만, 오히려 그 균형감이 창덕궁의 성격을 보여준다. 권위를 드러내되 과시하지 않는 태도. 인정전 마당의 품계석 역시 조정의 질서를 상징하지만, 공간의 인상은 한층 부드럽다.

 

정전 뒤로 이어지는 선정전과 희정당은 통치의 일상 공간이다. 선정전은 왕이 신하들과 국정을 논하던 편전이었고, 희정당은 후대로 갈수록 사실상 집무 공간으로 활용됐다. 특히 대한제국 시기에는 서양식 요소가 일부 가미되며 변화의 흔적을 남겼다. 창덕궁은 단일한 시대에 머물지 않고, 시대의 흐름을 흡수하며 변모해온 궁궐이다.

 

그러나 창덕궁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 있다. 바로 후원, 흔히 ‘비원’이라 불리는 정원이다. 공식 명칭은 창덕궁 후원. 궁궐 북쪽 깊숙이 자리한 이 정원은 왕실의 휴식과 사색, 그리고 정치적 은밀함이 교차하던 장소였다.

 

부용지와 부용정, 주합루 일대는 조선 정원 미학의 정수로 꼽힌다. 연못은 네모나게 다듬어졌지만, 주변의 나무와 지형은 자연 그대로의 흐름을 따른다. 주합루는 규장각이 설치됐던 곳으로, 정조의 개혁 정치가 구상되던 공간이기도 하다. 학문과 정치, 자연과 권력이 한 자리에 모였다.

 

 

후원 깊숙한 곳의 연경당은 또 다른 분위기를 품고 있다. 궁궐이라기보다 사대부 저택을 닮은 건물 구성은 궁궐 공간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창덕궁은 하나의 형식에 갇히지 않았다. 국가 의례의 공간과 개인적 휴식의 공간, 그리고 학문과 사색의 장소가 층위처럼 겹쳐 있다.

 

창덕궁 역시 역사적 굴곡을 피하지 못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됐으나 비교적 빠르게 재건됐고, 이후 여러 차례 화재와 중건을 거쳤다. 순조와 헌종 대에는 대규모 보수가 이루어졌으며, 대한제국 시기에도 기능이 유지됐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부 전각이 훼손됐지만, 다른 궁궐에 비해 상대적으로 원형이 많이 남았다. 그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조선 궁궐 건축의 실제 모습을 가장 온전히 마주할 수 있다.

 

창덕궁의 가치는 단순히 오래됐기 때문이 아니다. 이곳은 조선 왕조가 자연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준다. 유교 국가였던 조선은 질서를 중시했지만, 창덕궁은 그 질서를 자연과 충돌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 속에 스며들게 했다. 직선 대신 곡선, 과시 대신 균형, 장엄 대신 깊이.

 

오늘날 창덕궁을 걷는 일은 단순한 관람이 아니다. 전각 사이를 돌아 나가는 길목마다 시야가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한다. 의도된 장면 전환이다. 건축은 풍경을 액자처럼 구성하고, 방문객은 그 안을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특히 후원은 계절에 따라 완전히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봄의 연둣빛, 여름의 짙은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고요함이 궁궐과 겹쳐진다.

 

서울의 다섯 궁궐 가운데 창덕궁은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사색적이며, 가장 자연에 가까운 궁궐이다. 경복궁이 왕조의 선언이라면, 창덕궁은 권력이 어떻게 일상과 자연 속에서 지속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권력은 반드시 높은 곳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낮은 지형을 따라 흐르며, 나무 사이에 숨고, 연못 위에 비친 하늘 속에 스며든다.

 

창덕궁은 그렇게 말없이 증명한다.
왕조의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자연을 따라 흐르는 곡선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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