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편집국] 안다만해의 잔잔한 바다 위, 녹색으로만 보이는 작은 섬 하나가 지도에서 거의 흔적처럼 놓여 있다. 북센티널. 이곳은 위성사진으로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세계 최후의 고립사회이자, 외부인의 발을 허락하지 않는 절대 금지 구역이다. 해안선은 언제나 고요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기이한 긴장감이 공기를 가른다. 나무 사이의 그림자처럼 존재만 전해질 뿐, 그들의 언어도, 숫자도, 역사의 기록도 바깥세계에는 알려져 있지 않다.
고요하지만 닿을 수 없는 해안선
북센티널 섬은 인도령 안다만 제도에 속해 있지만, 행정의 손길은 해안선에서 멈춘다. 바다 위에서 바라보면, 이 섬은 그저 빽빽한 열대림이 해변까지 내려온 평범한 무인도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면 그 단단한 침묵이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나무의 그림자 사이로 인간의 기척이 스치지만, 그 존재는 결코 ‘보여지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섬은 수만 년 동안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고립된 문화를 이루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위성 사진에서조차 내부는 거의 식별되지 않으며, 해변에 떠밀려온 배의 잔해만이 이 섬이 단지 자연 공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공동체의 영토’임을 암시한다. 바람이 잦은 날에도 섬 위의 경계감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이곳은 조용하지만, 결코 텅 비어 있지 않다.
접근이 금지된 이유: 보호와 존중
북센티널 섬을 금단의 여행지로 규정하는 가장 명확한 이유는 인도 정부가 설정한 완전 접근 금지 구역이라는 점이다. 누구도 이 해안에서 5km 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며, 항해 지도에서는 이 지역이 넓은 원으로 표시된다. 이 금지 규정의 핵심은 ‘보호’다. 외부와 단절된 공동체는 외부인에게 적대적이라기보다, 외부로부터 오는 어떤 바이러스나 질병에도 취약하다. 단 한 번의 접촉이 공동체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과거 인류학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입증됐다.
또한 그들 역시 세대에 걸쳐 지켜온 생활방식과 리듬을 외부의 개입 없이 지키고자 한다. 단절은 선택이었을 수도, 역사적 결과였을 수도 있지만, 현재의 고립은 그들의 ‘세계관’ 자체로 기능한다. 그 경계를 흔드는 행위는 탐험이 아니라 침범이다. 그래서 이 섬은 ‘보호구역’이자 동시에 ‘침묵으로 선을 긋는 영토’가 된다.
사건과 오해의 역사
북센티널 섬의 인상이 지금처럼 강렬해진 데에는 몇 차례의 비극적인 사건이 존재한다. 조난한 어부들의 선박이 조용한 밤 해류에 밀려 섬 인근으로 떠밀렸고, 그들은 해안에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2004년 인도양 지진 이후 위성 영상이 잠시 화제가 되었을 때, 구조 헬기가 섬 상공을 지나자 주민들은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아 올렸다. 이 장면은 충격적이었지만, 사실 그 반응은 ‘적대’가 아니라 ‘경계’였다. 그들에게 하늘을 가르는 커다란 금속은 위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장 논란이 컸던 사건은 종교적 목적을 가진 외부인이 몰래 접근하다 목숨을 잃은 일이다. 세계는 이를 ‘적대적 부족의 공격’으로 단순화했지만, 전문가들은 오히려 외부인의 무단 접근이 그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릴 뻔한 사례로 평가했다. 북센티널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했을 뿐이며, 그 경계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자연스럽게 설정돼 있었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남겨 놓는 질문들
북센티널은 ‘미지의 문명’처럼 신비화되곤 하지만, 이 섬의 가치는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세계라는 데 있다. 우리는 그들의 언어나 신앙, 사회 구조조차 모른다. 모른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무지조차 존중의 한 형태일 수 있다.
어쩌면 이 섬이 금단의 여행지가 되는 이유는 위험성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닿지 못한 세계가 아직 존재한다는 ‘희귀한 사실’ 그 자체에 있다.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는 장소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지구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믿는 감각에 작은 틈을 남긴다. 그 틈은 공백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자연과 인간 집단이 세상의 변화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시간대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방식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북센티널을 바라본다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알지 못해도 되는 세계가 존재할까. 접근하지 않는 것이 가장 깊은 존중일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풍경과 사람들은 ‘보지 않는 거리’ 속에서만 온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섬은 여전히 고요하다. 바람은 나무 위를 스쳐 지나가지만, 그 침묵의 경계는 단단하게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그 경계야말로, 현대 문명 속에서 거의 사라져버린 마지막 질문 하나를 남긴다.
‘모든 곳을 알아야 하는가?’ 북센티널은 그 질문을 끝까지 품은 채, 오늘도 바다 한가운데 조용히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