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언덕 위에 거대한 건물이 ‘솟아’ 있지 않다. 오히려 땅에 파묻힌 듯 낮게 깔려 있다. 지붕 위에는 시민이 걸을 수 있는 잔디가 펼쳐지고, 그 위로 거대한 국기 하나가 하늘을 가른다. 호주의 권력은 과시 대신 구조를 택했다.
호주는 1901년 여섯 개 식민지가 연방으로 결합해 탄생했다. 영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와 가깝다. 정체성은 늘 두 방향을 동시에 바라본다. 이 의사당은 그 복합성을 담는 공간이다.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캔버라는 시드니와 멜버른 사이의 타협 도시다. 두 도시가 수도 경쟁을 벌이자 중간 지점을 택했다. 정치적 균형이 지리적 선택으로 나타났다. 연방의 논리가 공간을 만들었다.
국회의사당은 1988년 개관했다. 영국 왕실 중심의 상징에서 벗어나 독자적 국가 정체성을 강조하려는 시기였다. 건물은 수직이 아니라 수평이다. 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다.
이곳에서 자원 정책, 이민 정책, 대외 안보 전략이 결정된다. 철광석과 석탄 수출, 중국과의 무역, 미국과의 동맹 문제가 이 안에서 조율된다. 대륙의 방향이 정해지는 방이다.
이 장소가 만들어진 배경과 과정
연방 출범 이후 임시 의사당이 먼저 사용됐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국가 위상에 맞는 새로운 상징 공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국제 설계 공모가 열렸다. 호주는 세계에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새 의사당은 기존 구 의사당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세워졌다. 과거를 지우지 않고 위에 덧쌓는 방식이다. 역사와 현재가 시선 안에 함께 들어온다. 연속성과 전환이 공존한다.
건물 중앙을 관통하는 축은 전쟁기념관과 연결된다. 정치와 희생의 기억이 직선으로 이어진다. 안보 의식이 국가 정체성의 한 축임을 드러낸다. 설계는 곧 선언이다.
이 장소가 겪은 변화와 그 결과
호주는 한때 ‘백호주의’ 정책으로 이민을 제한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다문화 국가로 전환했다. 의회는 법을 바꿨고, 사회는 구성이 달라졌다. 오늘의 호주는 아시아계 인구 비중이 높다.
원주민 권리 문제도 이곳에서 다뤄졌다. 과거 동화 정책에 대한 사과가 공식 발표됐다. 토지 권리 인정과 헌법 개정 논의가 이어졌다. 완결은 아니지만 방향은 바뀌었다.
최근에는 인도·태평양 전략이 핵심 의제가 됐다. 미국과의 안보 협력, 중국과의 경제 관계 조정이 병행된다. 외교 노선은 복합적이다. 대륙은 고립되지 않았다.
오늘, 이 장소가 갖는 의미
오늘의 국회의사당은 투명성과 접근성을 강조한다. 유리와 개방형 공간이 많다. 시민은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권력은 가시화된다.
동시에 정치적 갈등도 존재한다. 기후 변화 대응, 자원 개발, 원주민 헌법적 인정 문제로 논쟁이 이어진다. 의회는 갈등을 흡수하는 장치다. 합의는 느리지만 절차는 유지된다.
남반구의 안정적 민주주의라는 평가는 이 공간에서 비롯된다. 쿠데타 대신 선거, 단절 대신 제도 개선이 반복된다. 시스템이 작동한다.
이 공간이 남긴 국가의 얼굴
캔버라 국회의사당이 보여주는 호주의 얼굴은 ‘현실적 균형’이다. 영국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독자 노선을 모색한다. 자원 의존 경제이지만 기술·서비스 산업으로 확장한다. 서구이면서 아시아에 발을 딛는다.
건물은 땅에 낮게 눕혀 있지만, 국기는 높다. 겸손과 자부심이 동시에 존재한다. 권력은 구조 속에 숨고, 상징은 하늘에 남는다.
이 장소를 이해하면 호주가 보인다. 광활한 자연만이 이 나라의 전부가 아니다. 연방과 절충, 그리고 전략적 계산이 국가를 움직인다. 캔버라의 의사당은 그 계산이 집약된 호주의 얼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