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한국 기항지는 매력적이지만, 입국 절차와 이동에 시간을 다 쓰고 나면 정작 즐길 시간이 없다." 인천항과 부산항을 찾은 외국인 크루즈객들의 공통된 원성이다. 본지가 입수한 '2025년 외래 크루즈 관광객 실태조사'는 이 문제를 '시간의 미스매치'라는 데이터로 극명하게 보여준다.
조사 결과, 관광객들이 한국 기항지에서 머물길 원하는 '적정 체류 시간'은 평균 10.3시간인 반면, 실제 하선 후 다시 배로 복귀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6시간 24분에 불과했다. 관광객이 기꺼이 지불할 준비가 된 4시간의 '골든타임'이 매번 허공으로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 "이동하다 끝난다"… 발목 잡는 교통 인프라와 단절된 터미널
이 4시간의 간극은 고스란히 지역 경제의 매출 손실로 직결된다. '기항지 수용태세 컨설팅 보고서'는 짧은 체류 시간이 관광객들을 터미널 인근의 제한된 코스에만 머물게 하는 '관광의 섬' 현상을 고착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개별 관광객(FIT)의 21.4%가 '관광지 간 이동 수단의 불편함'을 최대 불만 사항으로 꼽았다. 대규모 크루즈 터미널이 도심이나 주요 거점과 물리적으로 격리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연결하는 셔틀버스의 배차 간격이 불규칙하고 다국어 안내 체계가 미비해 하선 직후 관광객들이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터미널 내외부 공간 운영의 효율성이 떨어져 하선 직후 '병목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 체류 시간을 갉아먹는 주요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 승무원 평점 3.0점의 경고… "다국어 가이드와 편의시설 태부족"
반복 방문객이자 잠재적 홍보 대사인 크루즈 승무원들의 평가는 더욱 냉정하다. 타국 기항지와 비교한 한국 기항지의 수용 태세 점수는 5점 만전에 3.0점으로 '보통' 수준에 머물렀다. 승무원들은 특히 짧은 정박 시간 내에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의 부재와 언어 소통의 어려움을 핵심 개선 과제로 꼽았다.
컨설팅 보고서에 따르면, 영어권 외에도 다양한 언어권 가이드 확보가 시급하며, 외국어 표기 및 안내 자료의 질적 수준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볼거리는 많지만 안내가 없어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는 승무원들의 목소리는 한국 크루즈 관광의 현주소를 상징한다.
◇ 해외의 해법: 상해 바오산의 '속도 혁신'과 자메이카의 '공간 혁신'
해외 선진 항만들은 이미 '시간 벌기'를 위한 공간 재설계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해외 크루즈 운영 사례 부록'에 따르면, 상해 바오산 터미널은 약 24,000㎡ 규모의 입출국 공간을 최적화해 프로세스를 획기적으로 단축했다. 관광객이 배에서 내려 도심행 교통수단에 몸을 싣기까지의 시간을 최소화해 '진짜 관광 시간'을 확보해 주는 전략이다.
자메이카 포트 로얄이나 바르셀로나의 도심 안벽 이용형 터미널 사례 역시 시사점이 크다. 이들은 터미널 자체를 도심과 밀착시키거나 선석 상부에 건물을 축조해 이동 거리를 제로(Zero)화함으로써 체류의 질을 높였다. 특히 포트 캐너버럴처럼 다수 선석을 연계해 터미널 빌딩에 직접 접안하는 방식은 입국 직후 관광지로의 접근성을 극대화한 모델로 꼽힌다.
◇ 2026 크루즈 전성시대, '심리스(Seamless) 교통망' 구축이 성패 가른다
전문가들은 2026년 크루즈 전성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심리스 교통망'과 '야간 관광 콘텐츠' 확충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단순히 배를 많이 대는 '포트 세일즈'를 넘어, 하선 후 10분 이내에 로컬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스마트 셔틀 시스템과 다국어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박 시간을 저녁까지 늘리기 위해 기항지 인근의 야경 투어나 로컬 공연 등 전용 야간 상품을 개발해야 선사가 체류 시간을 연장할 명분이 생긴다. 컨설팅 보고서는 "장기적 관점의 종합 계획과 전담 조직 확대, 그리고 중소 항만의 한계를 보완할 규제 개선이 뒷받침되어야 크루즈 산업이 지역 경제의 실질적인 신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