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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 기획 | 2026 크루즈] ③ '쇼핑' 부산 vs '풍경' 제주… 항구마다 색깔 달라야 산다

천편일률적 코스 벗어나 '로컬 몰입형' 콘텐츠로 진화해야… 서산·포항 등 신규 기항지 전략이 관건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대한민국 크루즈 관광의 지형도가 항구별로 뚜렷한 개성을 드러내며 '각자도생'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모든 항구가 똑같은 면세점 쇼핑과 판에 박힌 시내 관광에만 매달리던 시대는 끝났다. '2025년 외래 크루즈 관광객 실태조사'와 '기항지 수용태세 컨설팅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크루즈 유치 전쟁의 성패는 각 항구가 가진 고유의 자산을 얼마나 '독보적인 콘텐츠'로 브랜딩하느냐에 달려 있다. 획일화된 공급자 중심의 관광에서 벗어나, 항구별 타겟층을 세분화하고 그들의 욕구를 정밀하게 타격하는 '핀셋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 부산은 '도시의 활기', 제주는 '자연의 휴식'… 관광객의 '원픽'은 이미 갈렸다

 

보고서 분석 결과, 기항지별로 관광객들이 꼽은 '가장 만족스러운 활동'은 소름 돋을 정도로 명확하게 구분됐다. 부산항을 찾은 관광객들은 세련된 도심 인프라와 결합된 '쇼핑(69.0%)'과 '박물관/전적지 방문'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줬다. 반면, 제주항과 강정항을 찾은 이들은 쇼핑보다는 '자연경관 감상'을 압도적인 만족 요인으로 꼽았다. 특히 제주권에서는 관광객의 절반 이상(56.5%)이 "경관을 즐길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답해, 현재의 쇼핑 위주 강제 코스가 오히려 만족도를 갉아먹고 있음을 시사했다.

 

여수항은 다른 대도시와 달리 '전통문화 체험'과 '지역 축제'에 대한 선호도가 3.8점(5점 만점) 이상으로 높게 나타나, 복잡한 메트로폴리스 관광과는 차별화된 '한국적 정취'가 핵심 경쟁력임이 수치로 입증됐다. 이는 지자체들이 단순히 인근 대도시로 관광객을 실어 나를 것이 아니라, 항만 배후 도시 자체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장소 마케팅'에 집중해야 함을 보여준다.

 

◇ 전문가의 날카로운 지적: "서산은 스토리텔링, 포항은 상권 연계가 생존권"

 

수용태세 컨설팅에 참여한 전문가 그룹의 진단은 더욱 구체적이고 매섭다. 특히 서산 및 충청권에 대해 전문가들은 "단순한 기항을 넘어 해미국제성지와 같은 독보적인 종교·문화 자원을 활용해 세계적인 '성지순례 크루즈'의 메카로 특화해야 한다"고 강력히 제언했다. 이는 단순 관광을 넘어선 '컨셉형 로컬 테마 도시화' 전략이다. 포항 등 신규 기항지의 경우에는 지역 상권 내 소비를 실질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 특화 메뉴 개발과 쇼핑 품목의 다양성 확보가 최우선 과제로 꼽혔다.

 

단순히 유명 관광지에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관광객이 지역 배후 자원을 깊이 있게 경험하도록 언어별 관광해설 가이드를 육성하고, 체류 시간당 소비 유발 프로그램을 정밀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보고서는 "중소 항만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지자체 간 협력 성장 계획을 수립하고, 기항지 관광객의 니즈를 반영한 로컬 브랜드 육성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 해외의 해법: 알래스카의 '시민과학'과 에스토니아의 '풍경 스케치'

 

글로벌 선진 기항지들은 이미 관광객을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참여시키는 '몰입형 투어'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해외 크루즈 운영 사례 부록'을 보면, 알래스카 주노의 '고래 시민과학 투어'는 승객이 직접 관찰한 고래 지느러미 사진을 연구 DB에 업로드하게 함으로써 단순 관람을 넘어선 정서적 유대감을 선사한다. 에스토니아 탈린은 지역 화가와 함께 올드타운을 산책하며 풍경을 스케치하고, 자신이 직접 그린 작품을 세상에 하나뿐인 기념품으로 소장하게 하는 소규모 워크숍을 운영 중이다.

 

튀르키예 쿠샤다스의 도자기 페인팅과 와인 테이스팅 결합 사례 역시 '장인의 작업장'을 쇼핑 공간으로 활용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천연염색, 한지 공예, 자개 부채 만들기" 등 우리 고유의 자산이 어떻게 크루즈 관광객의 지갑을 열고 '다시 오고 싶은 한국'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법을 제시한다. 이제는 제품을 파는 쇼핑에서 경험을 파는 쇼핑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돼야 한다.

 

◇ '모항(Base Port)'의 낙수효과… 2026 크루즈 전성시대의 최종 목적지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번 조사에서 특히 주목할 지점은 한국에서 여정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모항 관광객'의 경제적 파급력이다. 이들은 단순 기항객보다 체류 기간이 평균 2~3일 길고, 지역 호텔과 식당을 이용하며 1인당 지출 규모 또한 일반 기항객 대비 월등히 높다. 전문가들은 "국제 테마 크루즈 차별화 전략의 정점은 결국 모항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라며, "한·중·일 복합 항로 설계를 통해 한국을 동북아 크루즈의 출발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2026년 크루즈 전성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항구가 똑같은 옷을 입는 것이 아니다. 부산은 쇼핑과 미식의 메카로, 제주는 자연과 치유의 성지로, 서산과 여수는 역사와 감성의 항구로 거듭나야 한다. 각 항구의 색깔을 선명하게 다듬고, 외국어 표기 및 안내 자료 등 수용 태세의 디테일을 채우는 것. 그것이 전 세계 크루즈가 한국 앞바다를 가장 먼저 찾는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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