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충북 제천의 북쪽 산자락을 따라가다 보면 풍경의 속도가 갑자기 느려진다. 도로의 소음이 사라지고 대신 물결과 바람 소리가 들린다. 그곳에는 천 년 넘는 시간을 담고 있는 호수가 있다. 바로 의림지다. 의림지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고대 수리시설의 대표적인 사례로 알려져 있다. 정확한 축조 시기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삼한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설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농경 사회에서 물은 곧 생존이었다. 사람들은 산자락 아래 제방을 쌓아 물을 가두고, 그 물을 논으로 흘려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공 호수가 지금의 의림지다. 호수 제방에 서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물보다 나무다. 수백 년 세월을 버틴 소나무들이 물가를 따라 줄지어 서 있다. 이 숲을 ‘제림’이라고 부른다. 허리를 비틀며 물가로 몸을 기울인 노송들은 마치 오래된 풍경화를 현실로 꺼내 놓은 듯한 모습이다. 바람이 잦아드는 오후가 되면 그 풍경은 더욱 또렷해진다. 산 능선이 그대로 호수 위에 내려앉고, 소나무 가지가 물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호수는 거대한 거울이 되어 주변의 풍경을 조용히 품는다. 의
[뉴스트래블=박성은 기자] 중국 산둥성 칭다오의 도심 한복판, 붉은 벽돌 건물 위로 초록색 캔이 줄지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과거의 산업 유산과 현재의 관광 열기가 가장 선명하게 교차하는 공간, 그 중심에 자리한 곳이 바로 칭다오 맥주박물관이다. 묵직한 시계탑과 유럽풍 외벽, 그리고 지붕 위 대형 맥주 캔 조형물은 이 도시가 무엇으로 기억되는지를 단번에 보여준다. 이곳의 시작은 19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조계 시절 세워진 양조장은 중국 최초의 본격적인 맥주 공장 가운데 하나였다. 외벽에 새겨진 ‘1903’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연도가 아니다. 칭다오가 세계 맥주 지도에 이름을 올린 출발점이자, 도시 정체성의 기원이기도 하다. 독일식 라거 제조 기술은 전쟁과 정권 교체,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맥주박물관에는 흥미로운 일화도 전해진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장이 일본을 거쳐 중국 정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설비와 운영 주체는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양조 기술자들은 기존 제조 방식을 고수하려 애썼다고 한다. 한 노(老) 기술자는 “정권은 바뀌어도 맛은 흔들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레시피는 국적을 달리해도, 거품
[뉴스트래블=박성은 기자] 중국 산둥성 칭다오의 해안은 과거와 현재가 가장 역동적으로 맞닿는 공간이다. 그 중심에 자리한 곳이 바로 칭다오 올림픽요트경기장이다. 잔잔한 수면 위에 빼곡히 들어선 요트 마스트들은 마치 숲처럼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다. 그 뒤로는 유리 외벽의 고층 빌딩들이 겹겹이 서 있으며, 바다와 도시가 한 프레임 안에서 공존한다. 이곳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요트 종목이 열렸던 경기장이다. 베이징이 아닌 칭다오에서 해상 경기가 열린 이유는 분명했다. 황해를 끼고 있는 칭다오는 중국 내에서도 바람 조건이 좋고 해양 스포츠 기반이 탄탄한 도시로 평가받아 왔다. 당시 대회를 앞두고 해역의 수질 개선과 해조류 제거 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뤄졌고, 그 과정은 도시 환경 개선의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경기장에는 재미있는 일화도 전해진다. 올림픽을 준비하던 시기, 칭다오 앞바다에는 대량의 해조류가 떠밀려와 경기 운영에 비상이 걸렸다. 시민과 군인, 자원봉사자들이 총동원돼 해조류를 수거하는 장면은 당시 중국 언론의 주요 뉴스가 됐다. 위기를 함께 넘긴 경험은 이 도시가 ‘요트 도시’로 도약하는 전환점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의 경기장은 더
[뉴스트래블=박성은 기자] 붉은 지붕의 별장들 뒤로 겨울 바다가 잔잔히 펼쳐진다. 넓은 백사장과 암반 지대, 그리고 유럽풍 건물들이 한 화면에 담긴다. 사진은 중국 산둥성 칭다오의 대표적 해안 경관지인 팔대관 일대 풍경이다. 맑은 하늘 아래 해변은 한가롭고, 바다는 은빛으로 빛난다. 팔대관 해변에 서면 도시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보인다. 한쪽으로는 모래사장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바다로 이어지고, 다른 쪽으로는 숲과 언덕 사이 유럽식 별장들이 줄지어 서 있다. 썰물 때 드러난 바위 지대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바다를 관찰한다. 아이들은 조개를 줍고, 어른들은 사진을 찍는다. 차가운 계절이지만 풍경은 따뜻한 색을 띤다. 팔대관은 이름 그대로 ‘여덟 개의 관문’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 지역의 도로 이름이 산해관, 가욕관 등 중국의 유명 관문에서 유래했다. 청 말기와 독일 조계 시기를 거치며 외국인 거주지와 휴양지로 개발됐고, 독일식과 러시아식, 영국식 건축이 혼재된 독특한 경관이 형성됐다. 그래서 이 일대는 칭다오의 근대사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언덕 위에 자리한 화스러우는 팔대관의 상징적 건물이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이 석조 건물에는 장제스가 머물
[뉴스트래블=박성은 기자] 붉은 지붕의 물결 너머로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언덕 위에 서자 도시와 해안이 한눈에 펼쳐진다. 사진은 중국 산둥성 칭다오의 대표 전망대인 소어산에서 내려다본 풍경이다. 춘절 연휴를 맞은 도시가 맑은 햇살 아래 고요하게 숨을 고르고 있다. 소어산 정상에 오르면 칭다오의 시간이 층층이 겹쳐 보인다. 한쪽으로는 모래사장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바다로 스며들고, 다른 쪽으로는 붉은 기와 지붕의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멀리 고층 빌딩군이 솟아 있어 전통과 현대가 한 화면에 공존한다. 바닷바람은 차지만, 풍경은 따뜻하다. 소어산은 해발 60여 미터 남짓의 아담한 언덕이지만 상징성은 크다. 이름은 산의 능선이 작은 물고기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이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물고기가 뛰노는 모습이 잘 보여 어부들이 길흉을 점쳤다는 민간 전승도 있다. 실제 여부를 떠나, 산 이름에 얽힌 이런 이야기는 도시의 해양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 이곳은 칭다오의 근대사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장소다. 독일 조계 시기 조성된 붉은 지붕 건물들이 언덕 아래로 이어지며 독특한 도시 경관을 만든다. 그래서 칭다오는 ‘붉
[뉴스트래블=박성은 기자] 칭다오의 푸른 바닷바람을 뚫고 우뚝 솟은 붉은 소용돌이, 오사광장(五四广场)의 낮과 밤은 마치 한 편의 서사시처럼 서로 다른 이야기를 건넨다. 먼저 마주하게 되는 광장의 낮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정갈하게 가꿔진 보라색 꽃밭 너머로 저 멀리 '오월의 바람' 조형물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다. 하지만 이 평온함 뒤에는 중국 현대사를 뒤흔든 뜨거운 외침이 숨어 있다.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이 점령했던 칭다오를 일본에게 넘겨준다는 소식에 분노한 청년들이 베이징에서 '5·4 운동'을 일으켰고, 그 도화선이 됐던 곳이 바로 이곳 칭다오이기 때문이다. 광장의 이름 자체가 칭다오를 되찾으려 했던 그날의 뜨거운 애국심을 기리고 있는 셈이다. 해가지고 어둠이 내리면, 낮의 고요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광장의 주인공인 '오월의 바람'이 본색을 드러낸다. 높이 30m, 무게 700톤에 달하는 거대한 철제 구조물에 붉은 조명이 켜지는 순간, 마치 바다 위에서 거대한 횃불이 타오르는 듯한 장관이 펼쳐집니다. 이 나선형의 조형물은 단순히 멋을 부린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고 휘몰아치는 민족의 생명력과 역동적인 기운을 '바람'의
[뉴스트래블=박성은 기자]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 바다 위로 길게 뻗은 잔교가 사람들로 가득 찼다. 겨울 햇살이 엷게 번지는 오후, 모래사장과 방파제, 그리고 붉은 기와 지붕의 정자가 어우러지며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든다. 사진 속 장면은 중국 산둥성 칭다오의 상징, 잔교의 명절 풍경이다. 바닷바람은 차갑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따뜻하다. 가족 단위 방문객들은 모래사장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은 갈매기를 향해 손을 흔든다. 끝없이 이어진 인파는 명절 특유의 들뜬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한다. 잔교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새해를 맞는 시민들의 집합소가 된다. 잔교는 중국 산둥성 칭다오를 대표하는 해상 산책로다. 1891년 청나라 시기 군사용 부두로 처음 세워졌고, 이후 독일 조계 시기를 거치며 현재의 형태로 확장됐다. 바다 위로 약 400미터 가까이 뻗은 이 목조·석조 구조물은 도시의 근현대사를 함께 견뎌온 상징물이다. 잔교 끝에 자리한 팔각형 전통 누각 ‘회란각(回澜阁)’은 이곳의 상징적 장면이다. 푸른 바다 위 붉은 기와지붕이 떠 있는 듯한 모습은 칭다오를 대표하는 엽서 사진으로 널리 쓰인다. 특히 해 질 무렵이면 황금빛 햇살이 누각을 감싸 안으며
[뉴스트래블=박성은 기자] 1월의 애기봉평화생태공원에 서면, 강은 소리를 낮춘다. 연일 이어진 강추위 속에서 한강하구 ‘조강’은 얼기 시작했고, 강물 위에는 잘게 부서진 얼음들이 유빙이 되어 천천히 흐른다. 멈춘 듯 보이지만, 강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조강은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이 서해로 흘러가기 직전 만나는 곳이다. 모든 강의 기원이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처럼, 이곳은 오래전부터 ‘할아버지의 강’이라 불려왔다. 생명의 시작이자 역사의 출발점, 강은 여기서 하나가 된다. 혹한이 이어진 2026년 1월, 조강 위로 형성된 유빙은 이 계절이 아니면 쉽게 마주할 수 없는 풍경이다. 기온과 수위, 바람의 방향이 맞아떨어질 때에만 나타나는 자연 현상으로, 얼음은 얼었다 풀리기를 반복하며 강 위를 미끄러지듯 흘러간다. 거대한 강의 흐름 속에서 유빙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겨울의 시간을 기록한다. 애기봉에서 내려다본 조강의 풍경은 자연에만 머물지 않는다. 얼어붙은 강 너머로 이어지는 북녘의 산줄기, 그 위로 펼쳐진 고요한 하늘은 이곳이 지닌 또 하나의 얼굴을 드러낸다. 자연과 분단, 현재와 과거가 겹쳐지는 풍경은 이 계절이 아니면 쉽게 완성되지 않는다. 민간인 통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중국 후난성 창사시의 명승 악록산(岳麓山) 풍경구 안에 자리한 불교 예술 전시 공간, 사굴만상(四窟万像) 석굴·불상군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이곳은 중국을 대표하는 4대 석굴의 미학과 다양한 불교 조각 양식을 한 공간에 집약해 재현한 전시 구역으로, 불교 조형 예술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장소로 평가받고 있다. 사굴만상 석굴·불상군은 중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불교 예술 유산을 한자리에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조성된 문화 공간이다. 관람객들은 당대를 중심으로 발전한 불교 조각과 회화 예술의 양식, 그리고 그 역사적 맥락을 비교적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전시 구역 야외에는 거대한 좌불상이 설치돼 있으며, 이 불상은 ‘낙산대불의 원형(Prototype)’으로 제작됐다. 미륵보살상으로 재현된 이 조각은 당대(AD 618~907) 불교 조각의 특징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높이 약 15미터에 이르는 불상은 안정적인 비례를 갖추고 있으며, 부드럽고 우아한 얼굴 표현과 잔잔한 미소가 인상적이다. 당대 미륵 조상에서 나타나는 합리주의적 조형 감각과 낭만적인 미의식이 함께 드러난다는 평가다. 사굴만상 석굴·불상군은 창사에서 중국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중국 후난성 창사시 악록산 풍경구 깊숙한 곳에 자리한 사굴만상(四窟万像) 석굴 내부의 모습이다. 바위를 파 조성한 긴 회랑을 따라 수십, 수백의 불상과 벽화가 이어지며, 암석 속에 또 하나의 불교 세계가 펼쳐진 듯한 인상을 남긴다. 석굴 내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조형물은 와불이다. 거대한 불신 아래에는 다양한 표정의 얼굴 조각들이 줄지어 배치돼 구조물을 떠받치고 있으며, 인간의 희로애락을 압축해 놓은 듯한 이 얼굴들은 불법을 지탱하는 중생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자연스럽게 위로 향하도록 설계된 시선의 흐름 속에서 관람객은 조형이 전하는 상징성을 체감하게 된다. 천장과 벽면에는 불보살과 공양인의 모습이 벽화로 남아 있어, 조각과 회화가 하나의 공간 안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만불(萬佛)’을 주제로 한 불상 군상은 동일한 자세의 좌불들이 암벽을 빼곡히 채우며 장관을 이룬다.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형상과 그 축적이 만들어내는 밀도는 공간을 압도하고, 관람객의 시선을 붙든다. 하나하나는 소박한 조형이지만, 집적된 불상들이 펼쳐내는 장면은 불교 세계관이 말하는 무량함과 영원의 개념을 시각적으로 또렷하게 드러낸다. 사굴만상은 고대 석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