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파리에서 바스티유를 찾으려 하면 성은 보이지 않는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기념 기둥이 서 있고, 그 주변을 일상이 흐른다. 그러나 프랑스를 이해하려는 시선은 여전히 이 자리에 멈춘다. 바스티유는 존재하지 않지만, 프랑스 국가를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이곳은 왕권의 상징이 무너진 자리다. 프랑스 혁명은 건축물을 파괴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공간의 기능이 사라진 뒤 의미가 더 커졌다. 바스티유 광장은 국가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무대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바스티유는 원래 감옥이었다. 왕권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던 장소였다. 시민에게 이 건물은 억압의 시각적 상징이었다. 그래서 혁명은 이곳을 선택했다. 1789년 7월 14일, 시민들은 바스티유를 습격했다. 군사적 의미는 크지 않았지만 상징성은 결정적이었다. 권력이 더 이상 신성하지 않다는 선언이었다. 국가는 이 장면에서 방향을 바꿨다. 프랑스가 이 장소를 계속 기억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혁명의 시작이 특정 인물이나 제도가 아니라 공간에 각인됐기 때문이다. 국가의 탄생은 사건이 아니라 장면으로 남았다. 바스티유는 그 장면의 이름이다. 오늘날 프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이탈리아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이미지는 로마다. 수많은 유적과 광장이 겹쳐진 이 도시는 하나의 박물관처럼 보이지만, 그 중심에는 포로 로마노가 있다. 관광객에게 이곳은 폐허로 남은 고대 유적이지만, 국가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포로 로마노는 이탈리아라는 국가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에 이미 공공의 개념이 작동하던 공간이었다. 로마 제국은 사라졌지만, 그 공간은 폐기되지 않았다. 국가 이전에 형성된 질서와 공공성은 이후 수많은 정치 체제를 거치며 기준점으로 남았다. 이탈리아는 통일이 늦은 나라였지만, 국가를 설명하는 장면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포로 로마노는 그 출발점에 해당하는 장소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포로 로마노는 로마 공화정과 제정의 핵심 공간이었다. 정치, 종교, 사법, 상업이 한곳에 모여 작동하던 장소였다. 국가라는 개념이 정립되기 전부터 공공의 삶은 이미 공간으로 구현돼 있었다. 이 점에서 포로 로마노는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국가 원형의 증거다. 이곳에서 시민은 권력을 목격했다. 원로원이 자리했고, 재판이 열렸으며, 공식 의례가 반복됐다. 권력은 폐쇄된 궁전이 아니라 열린 광장에서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서울 종로구에 자리한 경복궁은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가장 먼저 언급되는 장소다. 수많은 여행 일정이 이곳에서 시작되고, 외국인 방문객의 시선도 이 궁궐에서 한국을 처음 만난다. 그러나 경복궁은 단순히 사진을 찍고 둘러보는 명소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 공간에는 한 나라가 형성되고 무너지고 다시 선택해온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다. 경복궁은 조선 왕조의 법궁이었고, 동시에 국가 권력이 작동하던 중심 무대였다. 전쟁과 식민지 시기를 거치며 파괴되고 훼손됐으며, 해방 이후에는 복원의 대상이 됐다. 그 과정에서 이 궁궐은 단일한 과거가 아니라 복합적인 역사 공간으로 남았다. 그래서 경복궁은 관광지를 넘어 한국이라는 국가의 성격을 설명하는 장소로 읽힌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경복궁은 조선이라는 국가가 공식적으로 자신을 드러낸 공간이었다. 왕이 집무하고 국가 의례가 거행되던 장소였다는 점에서 상징성은 분명했다. 정치는 이곳에서 결정됐고, 권력은 이 공간을 통해 시각화됐다. 국가의 중심이 어디인지를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장소였다. 궁궐의 구조는 단순한 건축이 아니었다. 근정전을 중심으로 한 위계적 배치는 통치 질서를 그대로 드러냈다
[뉴스트래블=편집국] 이 연재는 여행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우리는 ‘떠나자’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감히 목적지라 부르기 어려운 곳들을 하나씩 바라보았다. 발을 딛는 순간 위험해지는 땅, 접근 자체가 거부되는 바다,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침묵해야 하는 장소들. 지도 위에 존재하지만, 여행의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공간들이다. 한국편에서 우리는 기억과 붕괴를 보았다. 사람이 떠난 마을, 사라진 모래사장, 시간이 멈춘 공간들. 그곳들은 모두 여전히 ‘우리 곁’에 있었지만, 더 이상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장소가 되어 있었다. 금단이란 멀리 있어서가 아니라, 알고도 쉽게 발을 들일 수 없다는 사실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을 확인했다. 해외편으로 넘어가며 금단의 성격은 바뀌었다. 그것은 기억이 아니라 물리적 한계였고, 윤리였으며, 생존이었다. 사막은 인간의 몸을 거부했고, 섬은 외부 접촉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지하는 인간을 숨기기 위해 만들어졌고, 심해는 인간의 기술마저 시험했다. 이곳들에서 여행은 선택이 아니라 도전이었고, 종종 무모함에 가까운 시도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가장 위험한 장소일수록 인간의 흔적은 가장 깊이 남아 있었다. 마리아나 해구의 바닥에는
[뉴스트래블=편집국] 지구 곳곳을 여행해본 사람이라도, 이곳만큼은 감히 ‘목적지’라 부르기 어렵다. 태평양의 심해에 길게 패인 상처, 인간 문명이 끝나는 지점의 문턱. 마리아나 해구는 지도에도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이름만 남은 금단의 장소다. 아무리 위험한 여행지라도 ‘발을 딛을 수 있는 땅’이 존재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마리아나 해구는 존재 자체가 인간 접근을 거부하는 공간이다. 수심 1만m의 압력, 인간을 산산조각 낼 깊이지구에서 가장 깊은 지점으로 알려진 ‘챌린저 딥(Challenger Deep)’은 수심 약 10,920m. 이 깊이에서 가해지는 압력은 1㎡당 약 1,100톤에 달한다. 강철 선체는 찌그러지고, 인간의 신체는 구조를 유지할 수 없다. 체온은 유지되지 않으며, 호흡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여행의 조건은 단 하나다. “생존이 가능한가.”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부정이다. 마리아나 해구는 인간의 용기나 기술로 극복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이 심연은 인간보다 훨씬 오래된 자연의 규칙으로 작동하며, 그 규칙은 타협하지 않는다. 달 표면보다 덜 탐사된 곳인류는 달에 여섯 차례 착륙했다. 그러나 챌린
[뉴스트래블=편집국] 만족도 4점대.숫자만 보면 성공이다. 웰니스 관광은 잘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질문은 조금 더 깊게 던져볼 필요가 있다. 만족도가 높다는 사실은 과연 충분한 성과일까. 만족도는 결과다. 그러나 관광의 본질은 과정에 있다. 누가 접근할 수 있었는지, 누가 배제됐는지, 어떤 경험이 반복 가능했는지는 숫자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웰니스 관광 역시 예외는 아니다. 현재 웰니스 관광은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여행’에는 가까워졌지만, ‘모두를 위한 관광’에는 아직 거리가 있다. 비용, 접근성, 정보의 비대칭은 여전히 장벽으로 남아 있다. 만족한 사람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애초에 선택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또 하나의 질문도 필요하다. 웰니스 관광은 회복을 말하지만, 과연 지속 가능한 회복인가. 일회성 힐링에 머문다면 그것은 소비된 치유에 불과하다. 여행이 끝난 뒤에도 삶의 리듬에 영향을 남길 수 있을 때, 웰니스는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만족도 조사는 웰니스 관광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묻는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점수를 올리는 일이 아니라, 방향을 분명히 하는 일이다. 더 많은 시설이 아니라, 더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국제관광의 미래는 단일한 방향으로 수렴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기술 발전, 기후 변화, 인구 구조 변화,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관광의 전개 방향은 여러 갈래로 나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간한 ‘국제관광동향 2025년 제10호’에 따르면, UN Tourism은 2050년 국제관광의 전개 가능성을 네 가지 시나리오로 제시했다. 이는 예측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조건 아래에서 나타날 수 있는 미래의 경로를 가정한 분석 틀에 가깝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기술 주도의 초연결 관광이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가상현실 기술이 관광 전반에 깊이 스며들며 여행의 기획·이동·체험·소비가 디지털 기반으로 운영되는 환경을 가정한다. 관광객은 개인화된 추천을 받고, 일부 경험은 물리적 이동 없이 가상 공간에서 이뤄진다. 두 번째는 지속가능성을 중심에 둔 저성장 관광이다. 기후 위기 대응과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관광의 양적 성장은 제한되고, 대신 체류의 질과 지역 기여도가 중시되는 흐름이다. 장거리 이동은 줄고, 근거리·장기 체류형 여행이 늘어나는 구조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불균형과 분절의 관광이다. 지정
[뉴스트래블=편집국] 1883년 8월, 인도네시아 순다 해협에 있던 섬 하나가 사라졌다. 정확히는, 섬의 대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크라카타우(Krakatau). 당시 이 섬은 사람이 살던 곳은 아니었지만, 주변 해안에는 수십 개의 항구와 마을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그중 상당수는 지도에서 사라졌다. 크라카타우의 분화는 관측 사상 가장 강력한 화산 폭발 중 하나로 기록된다. 폭발음은 4800km 떨어진 인도양 건너편에서도 들렸고, 화산재는 성층권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이 사건의 핵심은 화산 그 자체가 아니라, 섬이 붕괴되며 발생한 연쇄적 파괴였다. 섬이 무너질 때, 바다가 움직였다1883년 8월 26일부터 27일까지 이어진 대폭발은 크라카타우 화산체의 약 3분의 2를 붕괴시켰다. 그 결과 바다로 떨어진 거대한 암반과 화산 물질은 즉각적인 해저 변위를 일으켰고, 이는 초대형 쓰나미로 이어졌다. 기록에 따르면 최대 40미터에 달하는 파도가 자바와 수마트라 해안을 덮쳤다. 항구는 사라졌고, 해안 마을은 흔적 없이 쓸려갔다. 당시 사망자는 약 3만 6천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이 화산이 아닌, 바다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이 파괴는 선택적이지 않았다.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K-ETA 전면 적용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단순하다. 이 제도가 치른 비용만큼의 성과를 냈는가 하는 질문이다. 관광 분야에서는 그 비용이 비교적 분명하게 숫자로 드러난다. 외래관광객 1인당 평균 소비 구조를 기준으로 하면, 방한객 감소는 단순한 방문객 수 감소를 넘어선다. 관광수입 손실 규모는 연간 수천억 원대로 추정된다. 관광산업의 특성상 이 손실은 숙박, 음식, 교통, 쇼핑으로 연쇄 확산된다. 실제 경제적 파급 효과는 통계에 잡히는 수치보다 크다. 반면 정책의 핵심 목표였던 불법체류 차단 효과는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전체 불법체류 규모는 큰 변동 없이 유지되고 있다. 특정 국가나 체류 유형에 집중된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관광에서는 손실이 발생했지만, 출입국 관리 성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 지점에서 실효성 논란이 제기된다. 불법체류 위험도가 낮은 국가까지 동일하게 적용한 전면 방식이 과연 효율적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관광 전문가들과 업계는 위험도가 높은 대상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는 ‘선별 적용’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지적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제도의 불투명성이다. K-ETA 불허 사유가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K-ETA 전면 적용 이후 나타난 관광 감소의 충격은 수도권보다 지방에서 먼저 감지됐다. 이는 체감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외국인 관광객의 이동 경로와 소비 구조를 보면, 지방관광은 정책 변화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집계한 외래관광객 통계와 실태조사를 종합하면, 코로나 이후 외국인 관광객의 수도권 집중도는 오히려 높아졌다. 반면 제주와 영남권 등 지방 방문 비중은 회복이 더디다. 관광 회복 국면에서 지역 간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 흐름은 관광통계와 외래관광객 실태조사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이유는 분명하다. 지방관광은 개별 자유여행보다 단체관광 의존도가 높다. 단체관광은 입국 단계의 불확실성에 가장 취약한 구조다. 출발 직전 K-ETA 불허가 발생하면 항공, 숙박, 교통, 가이드 일정이 동시에 무너진다. 수도권은 개별 여행 수요로 일부 완충이 가능하지만, 지방은 대체 수요가 거의 없다. 항공 노선에서도 차이가 드러난다. 동남아 노선의 회복 속도는 인천공항보다 지방공항에서 더 느리다. 일부 노선은 코로나 이후 아직 재개되지 않았다. 관광업계는 이를 수요 부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