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편집국] 멕시코 중부 고원지대에 자리한 돌로레스 이달고(Dolores Hidalgo)는 독립전쟁의 발상지로 알려진 도시다. 관광 안내서에는 혁명의 깃발과 성당, 도자기 공방이 먼저 등장한다. 그러나 도시의 가장 높은 언덕에는 지도에 작게 표시된 또 하나의 공간이 있다. 돌로레스 묘지. 이곳은 단순한 매장지가 아니라, 도시가 죽음을 대하는 방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장소다.
묘지의 입구는 평범하다. 담장은 낮고, 출입을 막는 철문도 없다. 대신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익숙한 ‘묘지의 풍경’은 빠르게 해체된다. 땅속에 묻힌 무덤보다 지상에 쌓아 올린 구조물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벽면처럼 이어진 납골 구조물, 색이 바랜 가족 묘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남겨진 생활의 흔적들이 이곳을 하나의 ‘거주 공간’처럼 보이게 만든다.
죽음이 밀려난 적 없는 도시
멕시코의 묘지는 죽음을 숨기지 않는다. 특히 돌로레스 묘지는 ‘죽은 자를 외곽으로 밀어낸 공간’이 아니라, 도시의 시간 속에 계속 남겨진 장소다. 이곳에서는 무덤 위에 음식을 올리고, 생전 즐기던 술병이나 장난감이 그대로 놓인다. 사망일은 기일이 아니라 또 하나의 기념일처럼 반복된다.
이런 풍경은 멕시코의 죽음관, 특히 ‘망자를 기억하는 문화(Día de Muertos)’와 맞닿아 있다.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이동이며, 관계의 종료가 아니라 형식의 변화라는 인식이다. 그래서 이 묘지는 공포의 장소라기보다, 도시의 또 다른 생활 구역처럼 기능한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이곳을 금단의 여행지로 만든다. 방문자는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이곳은 추모의 공간인가, 아니면 삶의 연장선인가. 그리고 그 경계를 외부인이 함부로 넘을 수 있는가.
관광지가 된 죽음의 풍경
돌로레스 묘지는 사진가와 인류학자, 그리고 일부 여행자들에게 알려져 있다. 화려한 색감의 무덤과 해골 장식, 제단은 시각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이곳은 테마파크가 아니다. 묘지 한편에는 실제로 최근에 매장된 흔적이 남아 있고, 가족들이 조용히 머무는 시간과 외부인의 시선이 겹친다.
멕시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이 묘지를 공식 관광 상품으로 적극 홍보하지 않는다. 명확한 안내 동선도 없고, 촬영에 대한 규칙 역시 엄격하게 정리돼 있지 않다. 그 결과, 이 공간은 늘 애매한 상태로 남아 있다. 열려 있지만, 환영받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장소. 이 모호함은 곧 윤리의 문제로 이어진다. 죽음을 ‘볼거리’로 소비하는 순간, 이 묘지는 의미를 잃는다. 그래서 돌로레스 묘지는 접근 가능한 동시에, 접근을 주저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금단의 이유
이 묘지가 금단의 여행지로 분류되는 이유는 위험 때문이 아니다. 치안도, 자연환경도 비교적 안정적이다. 금단의 핵심은 거리감이다. 이곳은 타인의 죽음이 현재진행형으로 존재하는 장소이며, 관람자가 아닌 ‘외부인’으로서의 위치를 끝까지 자각하게 만든다. 무덤 하나하나에는 이름이 있고, 연도가 있으며, 아직 닫히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 앞에서 여행자는 질문받는다. 우리는 어디까지 바라볼 수 있는가. 기억과 소비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돌로레스 묘지는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침묵 속에서, 살아 있는 도시가 죽음을 어떻게 품고 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이곳은 아름답고, 불편하며, 쉽게 추천할 수 없는 장소로 남는다. 그 점에서 돌로레스 묘지는 여행지가 아니라 하나의 기준점이다. 인간이 죽음을 대면할 때 어디까지 다가갈 수 있는지를 가늠하게 만드는, 조용한 금단의 공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