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6 (금)

  • 흐림동두천 1.3℃
  • 맑음강릉 7.6℃
  • 박무서울 3.6℃
  • 연무대전 2.6℃
  • 맑음대구 6.1℃
  • 맑음울산 8.8℃
  • 맑음광주 7.6℃
  • 맑음부산 10.1℃
  • 맑음고창 3.4℃
  • 맑음제주 10.8℃
  • 흐림강화 0.5℃
  • 맑음보은 -0.4℃
  • 맑음금산 0.9℃
  • 맑음강진군 3.0℃
  • 맑음경주시 2.3℃
  • 맑음거제 9.0℃
기상청 제공

[NT 분석] 주 4.5일제, 관광은 정말 늘어날까

여가가 늘어난 사회, 국내관광은 어떻게 달라질까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주 4.5일제 도입 논의는 단순한 근로시간 조정이 아니라, 여가와 소비 구조 전반을 다시 설계하는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관광은 이 변화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영역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주 4.5일제 도입이 국민 국내관광에 미치는 영향」 연구보고서는 주 4.5일제를 두고 “관광 수요의 절대량을 늘리는 정책이 아니라, 관광이 발생하는 구조 자체를 바꾸는 제도”로 규정한다. 이 보고서는 주 4.5일제가 관광에 미칠 영향을 낙관이나 비관이 아닌, 조건과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변화로 분석한다.

 

변화의 출발점은 무엇인가

 

이 연구는 근로시간 단축이 실제 여가 활용과 관광 행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설문조사와 해외 사례 분석을 병행했다. 단순히 ‘쉬는 날이 늘면 여행을 갈 것인가’를 묻는 방식이 아니라, 근로시간 변화에 대한 인식, 임금 감소 우려, 직종별 근무 특성, 기존 여행 빈도 등을 함께 고려해 관광 선택 가능성을 분석했다.

 

보고서는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제도 변화가 개인의 시간 인식과 소비 판단을 어떻게 바꾸는지가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주 4.5일제를 휴일 증가 정책이 아니라, 여가 선택의 조건을 바꾸는 구조적 변수로 본 것이다.

 

여행 일수보다 중요한 ‘출발 가능 시점’

 

보고서가 가장 중요하게 본 변화는 여행 일수 자체가 아니라 여행을 시작할 수 있는 시점이다. 국내여행은 오랫동안 토요일 오전 출발, 일요일 귀환이라는 압축된 일정에 맞춰 형성돼 왔다. 이 구조에서는 이동 시간이 긴 여행일수록 부담이 커지고, 결과적으로 근거리·당일치기 여행이 주류를 이뤘다.

 

주 4.5일제가 도입되면 금요일 오후라는 새로운 시간대가 생긴다. 보고서는 이를 “여행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시작할 수 있는 문이 앞당겨지는 효과”로 설명한다. 이 변화는 1박 2일에 머물던 국내여행을 2박 3일로 확장할 수 있는 현실적 여지를 만들고, 이동 거리의 제약을 동시에 완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국내여행의 숨은 제약이 풀릴 가능성

 

보고서는 국내여행이 생각보다 강한 시간 제약 속에서 이뤄져 왔다고 본다. 주말 이틀 안에 이동과 체류, 귀환을 모두 소화해야 하는 구조에서는 여행의 만족도보다 피로도가 먼저 고려된다. 금요일 오후가 확보되면 이 압박이 완화되고, 2박 3일 일정은 ‘무리한 선택’이 아니라 ‘현실적인 대안’이 된다.

 

이는 곧 여행 목적지의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존에는 거리와 시간 부담 때문에 배제됐던 지역이 일정 선택지 안으로 들어오고, 관광지는 ‘가고 싶지만 힘든 곳’에서 ‘갈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보고서는 이 지점을 국내관광 활성화의 가장 현실적인 경로로 본다.

 

해외 사례가 보여준 반복된 패턴

 

해외 사례 분석에서도 일정한 흐름이 반복된다. 영국, 프랑스, 일본, 캐나다 등 주 4일 또는 4.5일 근무를 도입한 국가들에서 관광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사례는 드물었다. 대신 여행의 빈도와 시점이 바뀌었다. 장기휴가보다는 짧은 숙박여행이 늘었고, 금요일 관광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프랑스는 이를 ‘확장된 주말’ 전략으로 흡수해 2박 3일 국내여행을 하나의 표준 상품으로 육성했다. 일본은 금요일 체크인 할인과 평일 관광 콘텐츠 확충을 통해 지방 관광 분산을 시도했다. 보고서는 해외 사례의 공통점으로 “제도 효과는 자연스럽게 나타나지 않았고, 정책과 시장 대응이 결합될 때만 변화가 가시화됐다”는 점을 지적한다.

 

자동으로 늘지 않는 관광, 구조적 한계

 

보고서는 주 4.5일제가 관광 증가로 자동 연결되지 않는 이유도 구체적으로 짚는다. 첫 번째 변수는 소득과 심리다. 근로시간 단축이 임금 감소로 인식될 경우, 추가로 확보된 시간은 여행이 아니라 휴식이나 개인 용무로 소진될 가능성이 높다. 보고서는 “여행은 여가 중에서도 비용과 계획이 가장 많이 필요한 선택”이라고 지적한다.

 

두 번째는 비용과 혼잡이다. 금요일과 주말에 여행 수요가 집중되면 교통 체증과 숙박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이는 늘어난 시간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관광 참여 의지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해외에서도 단축근무 도입 초기, 이 문제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관광 격차와 노동의 역설

 

주 4.5일제는 여가의 불평등을 완화하기보다 드러낼 가능성도 있다. 시간 자율성이 높은 직군과 그렇지 못한 직군 사이의 여가 활용 격차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교대근무·현장근무 비중이 높은 직종은 제도 혜택을 체감하기 어렵고, 관광 소비가 특정 소득층에 집중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관광산업 종사자 문제 역시 구조적이다. 관광 수요가 늘수록 숙박·외식·운송 분야의 노동 부담은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보고서는 “관광 활성화가 관광 종사자의 삶의 질 개선으로 자동 연결된다는 보장은 없다”고 지적한다.

 

지역관광에 주어지는 조건부 기회

주 4.5일제는 지역관광에 기회와 부담을 동시에 제공한다. 여행이 연중 여러 차례로 분산될 경우, 지방 관광지는 성수기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반면 분산에 실패하면 특정 요일에만 관광객이 몰리고, 지역의 수용 능력과 주민 피로도가 한계에 이를 수 있다.

 

보고서는 이와 관련해 “방문객 수 증가보다 체류 방식과 관리 전략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짧고 잦은 방문이 지역에 도움이 되려면 교통, 숙박, 콘텐츠가 함께 설계돼야 한다는 의미다.

 

국내관광의 향후 전개, 세 가지 가능성

 

이번 보고서는 주 4.5일제가 정착될 경우 국내관광이 세 가지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제시한다. 단기적으로는 금요일 출발을 중심으로 한 근거리 숙박여행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중기적으로는 평일 관광 콘텐츠와 비성수기 상품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여가와 노동의 경계가 옅어지며 워케이션과 체류형 관광이 일부 계층을 중심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이러한 변화는 교통·숙박 비용 완화와 지역 분산 전략이 결합될 때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을 보고서는 분명히 한다. 제도만으로 관광 구조를 바꾸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제도는 답이 아니라 조건이다

 

보고서는 주 4.5일제를 관광을 늘리는 해법이 아니라, 관광정책의 성과를 가르는 조건으로 정의한다. 쉬는 날이 늘어난 사회에서 여행이 일상이 될지, 일부만 누리는 선택지가 될지는 이후의 정책 설계와 시장 대응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결론은 단순하다. 주 4.5일제는 관광에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국내관광이 어떤 구조 위에 서 있는지를 묻는다. 그 질문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여가 확대 이후 한국 관광의 방향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포토·영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