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관광 가이드는 오래전부터 ‘곧 사라질 직업’으로 불려왔다. 설명은 AI가 더 정확하고, 번역은 즉각적이며, 일정 안내는 앱이 대신한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단순 해설 중심의 역할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연구 역시 관광 산업에서 인공지능 노출도가 높은 직무로 정보 전달 중심 업무를 꼽는다. 정해진 내용을 반복하는 역할일수록 기술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가이드는 변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그러나 보고서의 결론은 소멸이 아니라 재편이다. 인공지능은 직업을 없애기보다, 직무의 성격을 바꾼다. 관광 가이드 역시 설명자에서 판단자로 이동하고 있다. 여행 현장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하다. 날씨, 교통, 여행자의 건강 상태, 문화적 오해까지 매뉴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때 필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보다 현장을 읽는 능력이다. 보고서는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어려운 역량으로 비정형 상황 대응, 기획, 창의적 문제 해결을 제시한다. 이는 관광 가이드의 미래가 말솜씨가 아니라 책임 능력에 있음을 보여준다. 가이드는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을 관리하는 존재로 재정의되고 있다. 문제는 산업 구조다. 기술은 비용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여행은 점점 조용해지고 있다. 공항 체크인은 무인 기계가 대신하고, 호텔 프런트에는 사람보다 화면이 먼저 눈에 띈다. 항공권 예약부터 일정 관리까지, 여행의 많은 과정이 인공지능과 앱으로 처리된다. 여행자는 더 적은 대화로 더 먼 곳까지 이동한다. 편리함은 분명 커졌다. 과거처럼 정보를 찾기 위해 헤매지 않아도 되고, 언어 장벽도 낮아졌다. 관광은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재편되고 있다. 하지만 이 변화가 여행의 질을 높였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연구서 '인공지능이 문화·관광·콘텐츠 산업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관광 산업에서 인공지능 도입이 가장 빠른 영역으로 예약, 안내, 정보 제공 같은 반복 업무를 지목한다. 여행자는 더 많은 정보를 손쉽게 얻지만, 그 정보는 어디까지나 ‘계획된 상황’을 전제로 한다. 여행의 변수는 여전히 남아 있다. 문제는 계획이 어긋나는 순간이다. 항공편 지연, 일정 변경, 돌발 사고 같은 상황에서 여행자는 종종 시스템 속에 홀로 남겨진다. 앱은 작동하지만, 판단해줄 주체는 보이지 않는다. 연결은 유지되지만, 책임은 분산된다. 자동화된 관광 환경에서 여행자는 더 많은
[뉴스트래블=박성은 기자] 타이베이 MRT에서 내려 계단을 오르는 순간, 풍경이 달라진다. 빌딩 사이로 김이 피어오르고, 유황 냄새가 공기를 채운다. 베이터우의 온천 여행은 이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내리는 그 자리에서 이미 시작된다. 도시 한복판에서 온천이 일상이 되는 공간, 베이터우는 타이베이가 가진 가장 독특한 표정이다. 베이터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도시형 온천 지구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온천과 달리, 이곳의 온천은 생활권 안에 있다. 주거지와 공원, 박물관과 시장 사이로 온천 시설이 이어진다. 여행자는 특별한 준비 없이도 도시의 리듬 속에서 온천 문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 지역의 온천 역사는 타이완 근대사와 맞물려 있다. 일제강점기, 베이터우는 본격적인 온천 휴양지로 개발됐다. 신베이터우 기차역과 온천 박물관은 그 시기의 흔적을 전한다. 당시의 공중목욕탕과 철도 문화는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 박물관과 복원된 건축물로 남아 관광의 일부가 됐다. 베이터우의 온천은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니라, 도시의 기억이 축적된 장소다. 베이터우 온천 지구의 중심에는 자연 지형이 있다. 지열곡과 유황곡에서는 지금도 땅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
[뉴스트래블=편집국] 패키지 여행이 약속하는 것은 풍경이 아니다. 일정표에 적힌 도시도 아니다. 여행자가 돈을 내고 위임하는 것은 단 하나, “끝까지 관리받을 권리”다. 그래서 패키지 여행에서 가장 무서운 순간은 사고가 아니라, 관리가 멈추는 순간이다. 최근 미국 서부 패키지 여행을 둘러싼 논란은 한 사건의 진위를 넘어선 불안을 드러냈다. 온라인에 공개된 주장들은 아직 공식 확인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인 이유는 단순하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현실감 때문이다. 패키지 여행의 구조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패키지 여행은 집단 이동을 전제로 작동한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동선, 정해진 판단. 그 흐름에서 벗어나는 순간 개인은 급격히 취약해진다. 언어는 통하지 않고, 교통은 낯설며, 선택권은 이미 인솔 시스템에 맡긴 상태다. 이때 필요한 것은 융통성이 아니라 책임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종종 ‘일정 유지’가 ‘사람 보호’보다 앞선다. 문제는 특정 가이드의 판단이나 개별 회사의 태도가 아니다. 위기 상황에서 누가 최종 책임자인지, 어디까지가 본사의 책임인지, 현지에서 발생한 공백을 어떻게 메우는지에 대한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베이징 중심에 놓인 자금성은 도시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지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인상을 남긴다. 높은 성벽과 넓은 광장, 반복되는 문과 축선은 방문자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통제한다. 이 공간은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소가 아니다. 자금성은 중국이라는 국가가 권력을 어떻게 이해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중국에서 국가는 제도 이전에 질서였다. 그 질서는 눈에 보이는 형태로 구현돼야 했다. 자금성은 통치가 개념이 아니라 공간으로 작동했던 사례다. 그래서 이곳은 궁궐이면서 동시에 국가 그 자체였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자금성은 명·청 왕조 500년 동안 황제가 거주하며 통치하던 공간이다. 국가 권력의 중심이 한 치의 이동도 없이 고정돼 있었다. 권력은 이동하지 않았고, 백성이 다가가야 했다. 공간은 통치의 방향을 명확히 드러냈다. 이 궁궐은 접근 자체가 권력의 일부였다. 수많은 문과 마당은 단순한 건축 요소가 아니다. 단계적으로 권위를 체감하게 만드는 장치였다. 권력은 안쪽으로 갈수록 강화됐다. 중국에서 황제는 개인이 아니라 질서의 상징이었다. 자금성은 그 질서를 시각화한 결과물이다. 대칭과 축선, 반복 구
[뉴스트래블=박성은 기자] 겨울이 시작되면 타이완 북부의 작은 마을 쟈오시는 유독 또렷해진다. 타이베이에서 기차로 한 시간 남짓, 도심의 풍경이 사라질 즈음 온천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의 여행은 서두르지 않는다. 쟈오시는 먼저 걷게 하고, 그 다음에 담그게 하며, 결국 머물게 만든다. 겨울의 온천은 이 마을에서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 된다. 쟈오시는 타이완을 대표하는 온천 지역 가운데 하나다. 환태평양 화산대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 덕분에 풍부한 지열 자원을 지녔고, 중탄산수소나트륨 성분의 온천수는 피부에 자극이 적어 ‘미인탕’으로 불린다. 그러나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수질보다도 여행의 구조에 있다. 온천이 여행의 출발점이 아니라, 하루의 끝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쟈오시 여행은 마을 밖에서 시작된다. 파오마 고도는 완만한 경사의 산책로로, 숲 사이를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숨이 고른다. 길 끝에서는 허우동컹 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겨울에도 물줄기는 끊기지 않고, 차가운 공기와 대비를 이루며 풍경의 밀도를 높인다. 이 산책 코스는 운동을 위한 길이 아니라, 온천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 단계에 가깝다. 다시 마을로 내려오면 온천은 특별한 시설이 아니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일본 미에현에 위치한 이세 신궁에서는 오래된 건축물을 찾기 어렵다. 대신 비슷한 형태의 신전이 반복해서 새로 지어져 왔다. 이 공간은 오래됐지만 낡지 않았고, 전통적이지만 과거에 묶여 있지 않다. 이세 신궁은 일본이라는 국가가 전통을 다루는 방식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한 국가로 평가받지만, 그 과정에서 전통을 폐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변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세 신궁은 그 선택이 제도화된 공간이다. 일본의 시간 감각은 이곳에서 드러난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이세 신궁은 일본에서 가장 신성한 신토 공간이다. 천황가의 조상신으로 여겨지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모신 장소다. 국가와 종교, 왕권이 이 공간에서 연결된다. 일본의 권위는 이 신전을 통해 상징화돼 왔다. 그러나 이 권위는 고정된 건축물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세 신궁은 20년마다 전면 재건된다. 동일한 형태를 유지하지만, 재료와 구조는 새로 바뀐다. 전통은 보존이 아니라 반복으로 이어진다. 이 방식은 일본 국가의 성격을 반영한다. 과거를 절대화하지 않고, 현재의 손으로 계승한다. 국가의 정통성은 낡은 유물보다 지속되는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카이로 도심에서 차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사막 위에 기자 피라미드는 놓여 있다. 이집트를 처음 찾는 여행자 대부분은 이 장면을 국가의 얼굴처럼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피라미드들은 국가가 만들어낸 유산이 아니다. 국가는 훨씬 뒤에 등장했고, 문명은 이미 이곳에 서 있었다. 기자 피라미드는 이집트를 설명하는 출발점이지만, 동시에 국가라는 개념을 넘어서는 존재다. 왕조가 흥망을 거듭해도, 종교와 체제가 바뀌어도 이 구조물은 남았다. 이집트는 이 피라미드를 통해 과거를 소유하기보다, 과거 위에 서 있는 국가가 됐다. 그래서 이 공간은 지금도 현재형이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기자 피라미드는 이집트 국가의 시작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국가 이전의 질서를 드러낸다. 파라오는 신이었고, 통치는 인간의 시간이 아닌 영원의 시간에 맞춰 설계됐다. 권력은 생존이 아니라 지속을 목표로 했다. 이 공간은 정치 권력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었는지를 증명한다. 수십만 명의 노동과 자원이 한 목적을 위해 조직됐다. 국가는 아직 없었지만, 통치 시스템은 완성돼 있었다. 피라미드는 권력이 문명으로 작동한 결과다. 오늘날 이집트는 이 유산을 국가 상징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지역에 주소를 두고 살지는 않지만, 반복적으로 방문하며 소비하고 머무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관광생활인구’다.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를 겪는 지역에서 이들은 새로운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최근 발표한 ‘인구감소지역 관광 소비 변화 분석 및 관광 마케팅 전략 제안’ 보고서에 따르면, 다수의 인구감소지역에서 상주 인구는 줄어드는 반면 관광객 방문과 관광 소비는 일정 수준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증가하는 흐름이 확인됐다. 보고서는 이를 지역에 거주하지 않지만 지역의 경제 활동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관광생활인구의 영향으로 분석했다. 관광생활인구의 가장 큰 특징은 ‘체류와 소비’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감소지역을 찾는 관광객 가운데 숙박을 동반한 방문 비중이 점진적으로 늘고 있으며, 식음료·숙박·편의점·레저 관련 소비가 지역 카드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게 나타났다. 이는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관광이 아니라, 일정 시간 머물며 지역 생활권 안으로 들어오는 방문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관광객의 소비 구조다. 한국관광공사 분석 결과, 인구감소지역에서 관광객 소비는 대형 쇼핑시설보다 지역 식당, 숙박시설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이스탄불 구시가지에서 아야 소피아를 마주하는 순간, 터키라는 국가는 하나의 문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이 건물은 교회였고, 모스크였으며, 박물관이었다가 다시 모스크가 됐다. 기능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공간은 남았다. 아야 소피아는 한 국가가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조정해왔는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터키는 제국의 붕괴 위에서 탄생한 공화국이다. 과거를 완전히 지우지 못했고, 그렇다고 그대로 유지하지도 않았다. 선택과 보류, 전환이 반복됐다. 아야 소피아는 그 복잡한 역사적 선택이 응축된 장소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아야 소피아는 한 시대의 시작보다 전환의 순간을 상징한다. 비잔틴 제국의 대성당이었고, 오스만 제국의 정복 이후 모스크로 전환됐다. 권력이 바뀔 때마다 공간의 의미는 다시 정의됐다. 터키의 역사처럼 연속성과 단절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 건물은 파괴되지 않았다. 정복자는 이전 문명의 상징을 남겼고, 의미만 바꿨다. 이는 제국이 자신감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공간은 승자의 언어로 다시 읽혔다. 공화국 수립 이후 선택은 달라졌다. 아야 소피아는 박물관이 됐다. 종교를 국가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