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첫 입에 눈썹이 찌푸려지고, 두 번째 입에 고개가 갸웃해진다. 그리고 세 번째 입에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이것이 바로 일본 스시의 조상, 나레즈시(Narezushi)다. 비릿함과 산미가 공존하는 낯선 풍미, 그리고 수백 년 이어온 발효의 미학이 이 한입에 담겨 있다. 일본인에게 나레즈시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온 인내와 정성, 자연과 공존하는 삶의 철학이다. 여행자는 그 한입으로 일본의 ‘시간’을 맛본다. 나레즈시는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초밥, 스시의 가장 오래된 형태다. 냉장고는커녕 얼음조차 귀하던 8세기 무렵, 일본 사람들은 생선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쌀과 소금으로 발효시키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 결과, 단순한 보존식이었던 나레즈시는 세월을 거치며 하나의 미식 문화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에도 시가현, 와카야마, 나가노 일대에서는 나레즈시 전통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조리 과정은 인내의 연속이다. 먼저 민물고기나 전갱이, 송어 등을 깨끗이 손질해 소금에 절인 뒤 며칠을 재운다. 그다음 절인 생선을 밥과 함께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아 밀봉한 채, 몇 달에서 길게는 1년 이상 숙성시킨다. 그 사이 쌀의 젖
[뉴스트래블=정국환 기자] 남해의 끝, 여수의 바다는 늘 온화하다. 햇살은 느릿하게 물 위를 흐르고, 어선은 고요히 항구를 드나든다. 이곳의 풍경은 어느 순간 지중해의 해변 도시를 닮았다. 바다가 도시를 감싸고, 골목이 바다로 흘러드는 풍경. 여수를 걷다 보면 나폴리의 바람이 살짝 스쳐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 나폴리 역시 바다를 품은 도시다. 도시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언덕과 항구, 그리고 붉게 물드는 노을은 여수와 묘하게 닮았다. 사람들은 바다를 향해 걷고, 시장에는 생선의 향이 가득하며, 골목마다 삶의 온기가 흐른다. 두 도시 모두 화려하진 않지만, 그 안에 살아 있는 낭만이 있다. 바다와 언덕이 그리는 풍경의 닮음여수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돌산대교를 건너 바라보는 바다는 깊고 푸르며, 해 질 무렵 돌산공원에서 내려다보면 도시의 불빛이 바다 위로 퍼진다. 언덕길을 따라 이어지는 낮은 집들, 골목 끝의 포구, 그리고 바다 위를 천천히 미끄러지는 배의 실루엣까지, 모든 장면이 느리게 흘러간다. 나폴리도 그렇다. 카스텔 델로보 성을 지나 바라보는 항구의 풍경은 여수의 밤바다와 비슷한 리듬을 갖는다. 해변을 따라 늘어선 카페와 시장, 언덕 위에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AI가 여행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호텔 예약, 고객 응대, 마케팅까지 인공지능이 깊숙이 들어오면서 관광업은 효율화의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그러나 세계여행관광협회(WTTC)의 최신 보고서 「The Future of Work in Travel & Tourism」는 한 가지 역설을 제시한다. AI가 산업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인간의 자리를 다시 묻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AI가 도입된 호텔과 여행사는 생산성과 고객 만족도를 높이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기술을 다루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 관광 일자리의 미래는 단순히 사라지거나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람만이 일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 AI는 이제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다. WTTC 조사에 따르면 일부 글로벌 호텔 체인은 AI가 직원의 업무 효율과 고객 평가 점수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인사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업무의 객관화를 내세운 이 시스템은 한편으로 인간의 감정노동을 수치화하는 실험이기도 하다. '친절의 온도조차 데이터로 계산되는 시대', 호텔의 미소 뒤에는 알고리즘이 있다. 직무의 본질도 변하고 있다. 과거의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전 세계 관광산업이 다시 성장 궤도에 올랐지만, 인력이 사라지고 있다. 세계여행관광협의회(WTTC)가 최근 발표한 ‘Future of Work in Travel & Tourism’ 보고서에 따르면, 2035년까지 전 세계 관광산업에서 약 4310만 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됐다. 기술은 발전하지만 사람은 줄어드는, 역설적인 인력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WTTC는 팬데믹 이후 급반등한 여행 수요에 비해 노동력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숙박·운송·요식업 전반에서 구조적 인력난이 심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2035년 전까지 필요한 인력의 16%를 채우지 못할 것”이라며 저숙련직 2010만 명, 서비스·호스피털리티 직군 860만 명, 관리·기획직 420만 명이 심각한 인력 부족 상태에 놓일 것으로 내다봤다. WTTC는 이번 인력 위기의 근본 원인을 단순한 ‘인구감소’로 보지 않는다. 보고서는 “관광업이 더 이상 젊은 세대에게 매력적인 일자리로 인식되지 않고 있으며, AI·플랫폼 산업에 인재가 몰리는 구조적 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일자리의 수가 아니라 ‘선택받지 못하는 산업’이 된 것이 문제다. 특히
[뉴스트래블=박성은 기자] 남미 대륙의 관문인 아르헨티나는 유럽의 향취와 남미 특유의 활력이 공존하는 나라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고전적인 건축미와 예술, 탱고로 상징되며, 최근에는 ‘남미에서 가장 저렴한 한 달 살기 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고물가와 경제 불안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에게는 환율 덕분에 놀라운 체류 효율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Numbeo 자료에 따르면 2025년 기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생활비는 서울 대비 약 60% 수준이다. 특히 음식과 교통비는 절반 이하로, 중급 식당에서의 한 끼가 8달러 안팎이다. 현지 통화인 페소 가치가 약세를 이어가면서, 외국 통화(달러·유로)를 보유한 여행자나 원격 근무자에게는 체감 물가가 더욱 낮게 느껴진다. 장기 체류자 사이에서는 ‘남미의 가성비 수도’라는 별칭도 붙었다. 도시의 분위기는 유럽에 가깝다. 19세기 이민자들이 세운 건축물들이 곳곳에 남아 있어, 산책만으로도 클래식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레콜레타(Recoleta) 지역은 고급 아파트와 예술적인 카페가 즐비하고, 팔레르모(Palermo)는 젊은 디지털 노마드들이 몰려드는 트렌디한 동네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숙소는 에어비앤비나 중장기 렌털 형태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도시의 이름에는 시대가 묻어난다. 그 이름이 불리던 순간의 공기, 돌로 쌓인 문명, 그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숨결이 함께 스며 있다. 아테네와 멕시코시티는 그 증거다. 두 도시는 각각 서양과 중남미 문명의 중심에서 시작해, 시간의 흔적을 품은 채 오늘의 도시로 살아 있다. 신화와 신전, 신앙과 혁명의 이야기가 뒤섞인 이곳에서 ‘이름’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역사의 기억이 된다. 도시가 무너져도 이름은 남고, 이름이 불릴 때마다 문명은 다시 깨어난다. 아테네와 멕시코시티, 이 두 곳은 그렇게 시간 위에서 영원을 견디는 법을 알고 있다. ◇ 아테네, 지혜의 여신이 남긴 이름 고대 그리스의 심장부, 아테네. 이 도시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에서 이름을 얻었다. 그리스인들은 지혜와 전쟁의 신에게 도시를 바쳤고, 그 이름은 이후 서양 문명의 상징이 됐다. 아크로폴리스의 대리석 기둥은 여전히 하얗게 남아 있으며, 시간의 풍화에도 꿋꿋이 서서 ‘문명’이란 무엇인지를 묻는다. 아테네는 파르테논 신전만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기원, 철학의 발상지, 그리고 유럽 사상의 중심이었던 이 도시는, 위기와 부흥을 반복하며 오늘의 도시로 진화했다
[뉴스트래블=박주연 기자] “여기가 그렇게 유명한 곳이야?” 김나연(31) 씨는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의 유명 뷰포인트에서 그 말을 삼켰다. 붉은 지붕과 푸른 바다가 한눈에 펼쳐진 자리. 수많은 여행 블로그와 영상이 ‘꼭 가봐야 할 포토존’이라 소개한 명소였다. 별점 4.8, 수백 개의 후기, 드론으로 담긴 풍경 - 그 모든 찬사만큼, 사람도 많았다. “풍경은 멋있었어요. 근데 다들 사진 찍으려고 줄 서 있고, 드론이 머리 위로 세 대나 날아다녔어요. 감탄보다 ‘밀려서 서 있는 기분’이 더 컸죠.” 그녀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다, 풍경이 아닌 풍경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됐다. 그리고 이내, 붐비는 길을 내려왔다. 방향을 틀었을 뿐인데, 풍경이 달라졌다돌아오는 길, 그녀는 발길을 옆으로 돌렸다. 지도엔 ‘인기 카페’가 떠 있었지만 이번엔 굳이 다른 길로 들어섰다. 낙엽이 깔린 돌길, 담장은 오래된 회색빛이었다. 그리고 입구도 제대로 없는 작은 문 앞에 화분 네 개와 종이 간판이 놓여 있었다. “커피 말고도 괜찮은 하루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 문장에 이끌려 문을 열자, 안에는 책과 레코드, 오래된 소파가 뒤섞인 낡은 공간이 있었다. 노인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페루 안데스 고원, 얇은 공기 속에서 불길이 타오른다. 장작 위에는 통째로 구워진 작은 동물이 노릇하게 익어가고, 공기에는 고소한 향이 퍼진다. 그것이 바로 쿠이(Cuy, 기니피그 구이)다. 처음엔 놀라지만, 한입 베어 물면 생각이 달라진다. 바삭한 껍질, 촉촉한 속살, 그리고 입안에 퍼지는 은근한 고소함. 페루 사람들에게 쿠이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조상과의 대화, 생존의 지혜, 그리고 공동체의 따뜻함을 상징한다. 여행자는 그 한입으로 안데스의 시간과 문화를 함께 삼킨다. 쿠이는 페루 사람들에게 단순한 반려동물이 아니라, 축제와 제사의 중심이기도 하다. 수백 년 전부터 안데스 고원에서는 쿠이를 의례용으로 키우고, 중요한 행사 때 식탁에 올렸다. 오늘날에도 결혼식, 명절, 마을 축제에서는 쿠이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지역 주민들은 “쿠이는 조상과 연결되는 맛”이라고 설명한다. 조리법은 지역과 가정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은 단순하다. 작은 기니피그를 깨끗이 손질한 뒤, 안데스 전통 방식으로 나무 장작 위에서 천천히 구워낸다. 바삭하게 구워진 껍질 속에는 담백하고 촉촉한 살이 숨겨져 있어, 처음 맛보는 여행자라도 곧 그 풍미에 매료
[뉴스트래블=정국환 기자] 광주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깊은 상처를 품은 도시다. 금남로를 따라 걷다 보면 그날의 함성과 숨결이 여전히 공기 속에 남아 있다. 하지만 광주는 멈춰 있지 않다. 아픔을 덮지 않고 품어 안은 채, 예술과 문화로 치유의 언어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광주는 ‘기억의 도시’이자 ‘예술의 도시’다. 베를린 역시 비슷한 궤적을 걷는다. 장벽으로 갈라진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그 상처를 도시의 일부로 남겼다. 낡은 벽은 캔버스가 되었고, 잿빛 시멘트는 색으로 다시 칠해졌다. 분단의 흔적 위에서 베를린은 새로운 정체성을 쌓았다. 이 두 도시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닮아 있다. 광주의 문화적 심장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다. 옛 전남도청 자리에 들어선 이 공간은 단순한 예술 시설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역사 위에 세워진, 문화적 회복의 상징이다. 대형 미디어 파사드와 국제 전시, 공연 프로그램은 광주를 아시아 예술 네트워크의 중심으로 이끌고 있다. 시민들은 이곳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예술을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그 주변으로는 도시의 감각이 이어진다. 동명동과 양림동 일대는 카페와 서점, 공방이 공존하는 감성 거리로 변했다. 붉은 벽돌 건물 안에서
[뉴스트래블=박주연 기자] 유명하다는 집은 늘 붐빈다. 그러면 여행자는, 붐비는 그 줄의 한 사람이 된다. 도쿄를 처음 찾은 이지호(26) 씨는 ‘SNS 인기 라멘집’을 목표로 신주쿠역 인근의 가게를 향했다. 맛은 보장된다는 후기, 별점 4.7. 도착 예정 시간은 점심 피크 전인 오전 11시 20분. 완벽한 계획이었다. 문제는, 출구를 잘못 나왔다는 것. “도쿄역이랑 신주쿠역, 지하철 출구가 너무 많잖아요. 구글맵이 계속 ‘위성 신호를 재탐색 중’이라 뜨고, 제가 그냥… 길을 잘못 든 거죠.” 애써 다시 찾으려다 포기했다. 배는 고팠고, 다시 지도를 켜기엔 배터리가 12%밖에 남지 않았다. 결국 눈앞에 보이는 작은 골목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찾은 건 지도에 등록조차 안 된 작은 라멘집이었다. 간판도 없었다. 진짜는 조용히 거기 있었다 그 가게는 영어 메뉴판도 없고, 점원도 거의 말을 걸지 않았다. 자판기에서 티켓을 뽑고 자리에 앉았을 뿐이다. 조명이 어둡고, 실내는 낡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편하지 않았다. “라멘이… 너무 진했어요. 국물 맛이 세고, 삶은 계란에서 처음 먹어보는 감칠맛이 났어요. 이름도 몰라요. 지금도요.” 그는 가게 사진을 남기지 않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