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편집국] 태평양 한가운데, 지도에서 손가락으로 가리키기조차 어려운 작은 점 하나가 있다. 나우루 공화국. 국토 면적 21㎢, 인구 약 1만 명. 한때 세계 최고 수준의 1인당 국민소득을 기록했던 나라다. 그러나 지금 이 섬을 둘러싼 풍경은 번영의 기억보다, 고립과 붕괴의 흔적에 가깝다. 나우루는 사라진 자원이 남긴 질문 위에 서 있다. 인광석이 만든 기적과 착시나우루의 역사는 인광석과 함께 시작되고, 인광석과 함께 무너졌다. 20세기 초, 섬 중앙부에서 고농도의 인광석이 발견되면서 나우루는 순식간에 태평양의 부유한 섬국가로 떠올랐다. 비료 원료로 각광받은 인광석 덕분에 독립 이후 나우루 정부는 국민에게 세금 없는 국가, 무료 의료와 교육, 해외 투자 수익을 약속할 수 있었다. 1970~80년대 나우루의 1인당 소득은 호주, 일본을 웃돌았다. 그러나 그 번영은 지하자원을 파내는 속도만큼 빠르게 소비됐다. 국토의 약 80%가 채굴로 훼손됐고, 섬의 심장은 뾰족한 석회암 기둥만 남은 황무지로 변했다. 땅을 잃은 국가인광석이 고갈되자 문제는 한꺼번에 드러났다. 농업은 불가능했고, 식수는 빗물 저장과 해수 담수화에 의존해야 했다. 채굴 이후 방치된 중앙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중국 음식 이야기를 하다 보면 유독 자주 소환되는 장면이 있다. 살아 있는 원숭이의 머리를 열어 뇌를 먹는다는 이야기. 듣는 순간 얼굴이 굳고, 질문은 뒤로 밀린다. 정말 그런 음식을 먹는 걸까. 중국 광둥의 ‘원숭이 뇌 요리’는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음식 신화 중 하나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음식의 실체라기보다, 타문화에 대한 공포와 상상이 결합해 만들어낸 괴담에 가깝다. 이 편은 그 ‘먹히지 않은 음식’에 대한 이야기다. 원숭이 뇌 요리는 중국 전통 요리서나 광둥 지역의 실제 식문화 기록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명·청대의 문헌, 근현대 미식 자료, 심지어 식문화 민속 조사에서도 이를 실제 음식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널리 퍼진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서구에서 중국을 ‘기이한 식문화를 가진 타자’로 소비해온 오랜 시선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중국에 대한 여행기와 식민지 보고서에는 과장과 왜곡이 빈번했다. 낯선 식재료, 내장 요리, 살아 있는 해산물을 조리하는 방식은 곧바로 ‘잔혹함’으로 번역됐다. 원숭이 뇌 이야기는 이런 맥락에서 증폭됐다. 실제로는 특정 문학 작품이나 풍문이 반복
[뉴스트래블=편집국] 길은 항상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제방 위로 차량이 오가고, 섬은 육지의 연장처럼 놓여 있다. 그러나 몽생미셸에서 길은 영구적인 약속이 아니다. 바다는 하루 두 번, 정확한 시간에 도착해 그 약속을 철회한다. 물이 차오르는 순간, 섬은 다시 섬이 되고 인간은 선택의 결과만을 남긴다. 시간표를 가진 바다몽생미셸이 위치한 노르망디 해안은 유럽에서도 조수 간만의 차가 가장 극적인 지역이다. 최대 14미터에 이르는 조차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지형 전체를 바꾸는 힘이다. 썰물 때 드러나는 모래 평원은 몇 시간 동안 육지와 섬을 연결하지만, 밀물이 시작되면 그 연결은 조용히 해체된다. 물이 차오르는 속도는 빠르다. 파도처럼 몰려오지 않고, 사방에서 동시에 상승한다. 방향 감각은 무력해지고, 조금 전까지 ‘길’이었던 공간은 경계 없는 수면으로 변한다. 몽생미셸 인근에서 반복돼 온 조수 갇힘 사고는 이 속도를 과소평가한 결과였다. 단단해 보이는 모래의 함정섬 주변의 모래 평원은 안정적인 지반이 아니다. 조류와 강물이 뒤엉키며 형성된 이 지역에는 유사가 광범위하게 분포한다. 표면은 마른 평원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발을 디디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생선도, 고기도 아닌 작은 바구니다. 그 안에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애벌레가 수북이 담겨 있다. 여행자의 시선에서는 쉽게 ‘이색 음식’으로 분류되지만, 현지에서는 낯설지 않은 식재료다. 애벌레는 숲이 제공하는 단백질이고, 애따께는 그 단백질을 받아들이는 가장 일상적인 주식이다. 이 두 음식이 한 접시에 오를 때, 코트디부아르의 식문화는 비로소 완성된다. 코트디부아르에서 식용으로 쓰이는 애벌레는 주로 야자수나 특정 나무에서 채취된다. 우기에 접어들면 애벌레는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단백질원이 된다. 불에 살짝 구워 먹거나, 기름에 볶아 소금과 향신료를 더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고소하다. 맛만 놓고 보면 새우나 견과류와 닮았다는 표현이 자주 따라붙는다. 애벌레 식용의 배경에는 환경과 경제가 있다. 가축 사육이 쉽지 않은 지역에서 곤충은 효율적인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사냥에 비해 위험이 적고, 숲을 크게 훼손하지도 않는다. 애벌레는 생존의 선택이었고, 시간이 흐르며 음식으로 정착했다. 오늘날에도 이는 특별식이 아니라 계절이 오면 자연스럽게 식탁에
[뉴스트래블=편집국] 후지산 북서쪽 기슭에 숲이 하나 펼쳐져 있다. 지도에는 분명 숲이라 적혀 있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면 바다에 잠긴 듯한 감각이 먼저 찾아온다. 소리가 흡수되고 방향감각이 흐려지는 곳. 일본에서는 이곳을 ‘아오키가하라’, 혹은 ‘주카이’, 침묵의 바다라 부른다. 화산이 만든 숲의 구조아오키가하라는 자연적으로 매우 특이한 숲이다. 약 1200년 전 후지산의 대규모 분화로 흘러내린 용암 위에 형성된 숲으로, 땅 아래는 다공성의 현무암층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지형 때문에 나무의 뿌리는 깊게 내려가지 못하고 지표 가까이 퍼지며, 그 결과 숲 전체가 낮고 빽빽한 구조를 띤다. 이 용암 지반은 전파를 흡수하고 나침반의 오차를 키운다. 휴대전화 신호가 불안정해지고, GPS 위치 정보도 흔들린다. 숲 안에서 방향을 잃기 쉬운 이유는 미신이 아니라 지질학적 특성에 가깝다. 외부 소음은 나무와 지형에 흡수돼 빠르게 사라지고, 바람마저도 숲 안쪽에서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침묵’이라는 인식의 형성아오키가하라가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자연환경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 사회에서 이 숲은 오랜 시간 동안 문학, 구전, 대중문화 속에서 ‘고립’과 ‘침묵’